[헤럴드 지밸리 = 노재환 논설위원 기자]쌀쌀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말기 암으로 생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지인의 병문안을 위해 서울에 위치한 완화병동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그곳을 갈 때마다 항상 소아과를 지나치게 된다. 엄마의 품안에서 울다 지쳐 잠들어 버린 아이는 물론이고, 주사바늘을 보며 자지러지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음에도 해맑게 웃는 아이의 눈과 마주치기도 한다. 평소 같으면 별다른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날따라 마음 한 견이 숙연해지며 복잡해짐은 왜였을까?겨우내 차디찬 흙의 무게를 이겨낸 후, 돋아난 새싹 그리고 그 싹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꽃을 피워내고, 열매를 맺고, 신록의 푸름으로 그늘을 내어주다 병들고 시들다 시간의 마침표를 찍게 되고 이듬해 또 다시 새롭게 시작함은 곧 자연의 순환이다.문득 “더 이상 무심히 시간을 흘려보내선 안 돼”라며 마침표가 멀리 있다고 여겼던 필자의 무의미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는 순간이다.시공간을 뛰어넘어, 내 손가락에는 슬픔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그 슬픔과 말갛게 만나기 위해 필자는 손에서 팬을 놓지 않는다. 오른손에 팬을 잡는 날은 어머니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리 시절 어머니는 소는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가야한다고 귀에 못이 베길 정도로 말씀하시곤 하셨다.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 창가에 앉아 있노라면, 시공간을 훌쩍 넘어 시골집 마루에서 어머님의 무릎에 누워 마당 한 모퉁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서걱대는 바람소리와 그 바람을 파고들어 내 코끝은 적셨던 들국화 향이 무덕이로 어머니의 품안으로 들어와 내안에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그해 가을, 그 이후의 가을은 늘 아팠다. 온 가족이 신발을 벗고 들어섰던 툇마루 앞에 서는 꿈을 꾼다. 그 시절 어머니의 모습과 마음이 간절함으로 아렴풋이 전해온다. 오래된 기억은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선명해지기도 하는지 어머니와의 기억 일부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 남아 있음을 느낀다.겨울이 문턱까지 들어왔다. 유년의 탑은 근심 위에 근심 하나 얹어도 쓰러지지 않으리라. 그 시절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딸과 아들을 위해 찾은 절에서 내 묵은 상처를 다독이고 어루만져 주고 온다. 오십년 가까이 삭혀 온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도 내려놓고 아이들에 대한 욕심도 덜어 두고 온다. 방 안 어디선가 은은한 국화 향이 코끝을 스치는 그 순간, 달력의 마지막 장과 마주한다.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6년. 새천년이 시작된다고 요란하던 때가 어제의 일만 같은데 올해도 갈무리를 지을 시간이다.문득, 췌장암으로 시한부 생명을 살아가던 미국 펜실베이니아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랜디 포시가 ‘마지막 강의’에서“시간은 우리가 가진 전부이고, 언젠가는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가 현재 병에 걸려 있지는 않더라도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 확실하다고 볼 때,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리라.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필자에게 남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하곤 한다. 우리는 한해를 보내고 또 다른 새해를 맞으며, 2017년이라는 가지 않은 길을 향해 걷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과 미련, 동경 등이 있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우리에게 있어 가지 않은 길이란, 그저 익숙한 일상일지 모른다. 또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는 순간이기도하다. 로버스트 프로스트는 말한다. “우리가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은 탄탄대로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온갖 험로와 위험이 도사리는 길도 아니”라고. 그는 또 “서정적 자아인 나는 어느 가을날 숲 속에서 두 갈래의 길을 만나 망설이다가 그 중 사람이 적게 다니는 길을 택하고, 선택한 길을 가면서 다른 길은 훗날을 위하여 남겨 두고, 자신이 선택한 길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회상한다.한편, 미국 시인 중 가장 순수한 고전적 시인으로 손꼽히는 프로스트는 소박한 전원의 정서를 인생의 문제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그는 숲 속에 난 두 갈래의 길을 삶에 대한 희구와 인생행로에 대해 회고한다. 그리고 숲 속에 나타난 두 길은 운명 앞에 나타난 두 갈래의 인생행로와 상호관계를 가지며 펼쳐진다고 말한다. 누구든 동시에 두 길을 갈 수 없다. 바로 여기에서 인생의 고뇌와 인간적 한계와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가지 않은 길과 마주하다보면, 자신이 걸어온 길보다는 걷지 않았던 길에 대한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우리는 지금 가지 않은 길, 2017년이라는 새해를 향해 발을 내딛고 있다. 당장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그저 낙담하고 절망하기보다는 용기 내어 가볼 것을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