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지혜 기자]지난 13일 오전. 4000여명이 상주하고 있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트레이드타워와 5000여 명이 있는 아셈타워에서 사이렌 소리와 함게 “본 건물에 가상화재가 발생했으니 남측 또는 북축의 비상계단으로 침착하게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코엑스에서 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입주 직원 모두가 참여하는 대규모 대피 훈련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참여 인원은 저조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트레이드타워에서는 전체의 30%가량인 1500여명, 아셈타워에서는 이보다 적은 800여명만 대피에 나섰다. 연막탄으로 피운 노란 연기가 건물을 휘감았지만 상당 수의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평상시처럼 일을 하고 비상훈련에 참여하지 않았다. 긴장감은 전혀 없었고, 심지어 키득대는 이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일상생활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이 속속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지만 시민들의 안전에 대한 경각심은 여전히 낮기만 하다.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수학여행 중 발생한 사고는 총 576건이다. 이 숫자는 지난 2011년 129건에서 2013년 216건으로 매해 증가하고 있다. 학교에서 일어난 안전사고 역시 6년간 67.4%나 증가했다.

수학여행 뿐 아니라 캠핑장의 위험도도 높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전국 1866개 캠핑장 중 90% 가량은 미등록 시설로, 캠핑장 안전사고 역시 2009년 429건에서 2011년 3004건으로 급증했다.

이처럼 안전사고가 비일비재한데도 일반 시민들이 스스로 안전에 집중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최근 경기도 용인시에서 밀폐된 공간에서 LP가스가 내장된 분사식 먼지제거기를 사용한 후 진공청소기를 사용해 한 명이 얼굴에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식목일에 산에 나무를 심으러 갔다가 생기는 산불사고 역시 10년간 평균 10건 가량이 발생한다. 이 모든 것이 일상적인 상황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경각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시민들의 자원봉사와 아픔을 나누는 성숙한 의식은 빛을 발했지만, 대형참사 방지와 관련한 안전대책엔 불감증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같은 시민들의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사회 전체의 조급증을 꼽는다.

조원철 연세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안전불감증은 의도적이라고 할만큼 위험한 수준”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한국은 역동적인데 그 역동성 속에 불안정이 포함된다”며 “다른 사람보다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하고 그러다보니 안전에 대한 생각을 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경쟁심이 지나치고 여유가 없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굴러가기 위해서 안전불감증이 당연히 따라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준섭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역시 “제도가 부재해서 안전불감증이 있는게 아니라 사회적 의식이 안전에 관심이 없는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사고가 나도 누가 크게 죽거나 다치지 않으면 우습게 넘어가고 세월호 정도의 참사가 발생하면 그제서야 부랴부랴 제도를 만든다”며 “제도가 있다고 해서 안전한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고, 사람들의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 사고와 같은 대형참사가 발생하면서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하게 하락했다. 헤럴드경제가 지난 7일 두잇서베이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대 후반 청소년 10명 중 7명은 “세월호급 사고가 또 다시 발생해도 정부가 신속하게 대처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일반 시민들의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가운데 제도에 대한 신뢰마저 사라지면 또 다시 ‘제2의 세월호’와 같은 대형참사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사회적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대형참사는 역사적으로 정부나 재난당국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실종된 시민의식도 한몫을 한다는 점에서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난 선진형 시민사회로 빨리 도약해야 하다는 게 중요하다. 이는 교육을 통한 ‘안전문화 체득화’로 가능하다는 평가다.

심재섭 교수는 이에 대해 “형식화된 민방위 훈련 등을 통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공익광고를 강화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안전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황윤민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안전 문제가 좀 생겨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이를 등한시 했다”며 “더이상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들도 이를 받아들이고 정부 역시 이를 솔직히 밝혀 정책 방향을 성장이 아닌 안정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