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은 영어로 ‘Justice(정의)’라고 부른다. 직무 자체에 최고법원의 구성원으로서 오직 헌법과 법률, 그리고 법관의 양심에 따라 국가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독립해 판단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최근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자에 대해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청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사전 협의와 절차적 완결성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반면, 대법원장 측 논리는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제청권을 부여한 이상 대통령이 사실상 후보자를 다시 고르도록 요구하는 것은 제청권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헌법이 시행된 1987년 이후 처음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해석이 분분하다.
영미법을 대표하는 미국은 대통령이 연방대법관을 지명하고 상원이 권고와 동의(advice and consent)를 통해 인준한다. 대통령의 후보자 선택권이 매우 강한 구조이지만, 그만큼 상원의 견제가 중요시된다.
대륙법을 대표하는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 재판관 16명 가운데 절반은 연방하원이, 나머지 절반은 연방상원이 선출하되 모두 3분의 2이라는 높은 찬성이 필요하다. 특정 정당이나 정부가 독점하지 못하도록 정치적 합의를 강제하는 장치다.
우리는 미국과 독일의 중간쯤에 있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관 인선을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대법원장의 제청권, 국회의 동의권, 대통령의 임명권으로 나누어 놓았다. 대법관 인사를 ‘한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여러 헌법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 속에 두고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승패가 아니라 원칙이다. 헌법정신에 따라 대통령은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존중하고, 대법원장은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해야 한다. 대통령이 후보자에 대해 우려가 있다면 그 사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협의할 수 있다.
그러나 협의가 곧 대통령의 동의를 제청의 전제조건으로 만들면 안된다. 반대로 대법원장 역시 제청권을 방패 삼아 대통령과 모든 소통을 거부하거나 대법관 공백을 장기화해서는 안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협의하되 종속시키지 않는 절차’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후보자의 자질과 사법부 구성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교환하되, 최종 제청은 대법원장의 독립적인 판단으로, 국회의 동의는 국회의 독립적인 판단으로, 대통령의 임명은 대통령의 헌법상 책임 아래 이뤄져야 한다.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언급한 것처럼 대법원은 결코 임명한 대통령의 것이 아니다. 오직 헌법과 법률, 그리고 자신의 양심에 책임지는 정의(Justice)의 결정체여야 한다. 이번 논란이 대통령, 대법원장, 국회가 서로의 권한을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하는 헌법적 계기가 되어야 한다. 누가 임명되더라도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의를 판단할 수 있는 제도가 확립돼야 한다. 그것이 대법관을 단순한 ‘Judge’가 아니라 ‘Justice’라고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이찬희 법무법인(유) 율촌 고문연세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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