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은 개인 아닌 ‘사회적 질병’

“마음 건강도 관리…연결의 감각 중요”

‘자살률 1위’ 오명…국가적 대응 시급

신간 ‘자살 위기 개입 이해…’ 공동 집필

대한불교조계종 성관사 주지 성진스님이 8일 서울 종로구 도반HC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창빈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성관사 주지 성진스님이 8일 서울 종로구 도반HC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창빈 기자]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죽고 싶은 게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입니다. 그 고통을 사회가 조금이라도 덜어줘야 합니다.”

생명 존중과 자살 예방 활동을 이어 온 대한불교조계종 성관사 주지 성진스님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앞둔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도반HC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나 극단적 선택을 개인의 의지나 정신력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하는 ‘사회적 질병’이자 공중 보건의 문제라는 것이다.

성진스님이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종교인으로서 책임과 함께 군종 장교 시절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당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가 가까스로 구조된 장병과 끝내 생을 마감한 이들을 만나면서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이후 조계종 청소년 단체 파라미타에서 아이들과 만나며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절감했다. 스님은 “생각보다 많은 청소년이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그런데 어른들이 공부만 신경쓰고 아이들의 아픔은 좀 쉽게 여기지 않았나 싶었다”면서 “좀 더 책임 있게 아이들을 보듬고 문제 해결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고민은 상담과 코칭에 대한 공부로 이어졌다. 성진스님을 비롯해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융합상담코칭을 함께 공부한 상담·심리·사회복지 전문가 14명이 공동 집필한 ‘자살 위기 개입 이해와 실전 프로그램’(송신영·정진환·이신석·정하늬·이해영·이주현·박신영·성진·김영삼·최은경·송미숙·차승민·진현식·이주혜 지음, 심민정 편저, 한국문화사)은 위험에 놓인 사람들을 돕기 위한 이론과 실무를 엮은 지침서다.

성진스님은 “이 문제를 더 이상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마음이 힘들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는 것만으로도 다시 일어날 힘을 얻을 수 있다”며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방법을 찾고자 뜻을 모았다”고 소개했다.

극단적 선택, 개인 문제 아닌 ‘사회적 질병’

성진스님은 한국의 높은 자살률에 대해 경제적 어려움과 급격한 사회 변화, 고립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면서도, 특히 오랫동안 극단적 선택을 ‘정신적 나약함’으로 여기고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본 사회적 분위기를 지적했다.

“20세기 이후 이미 세계적으로는 이 문제를 개인이 아닌 공중 보건의 문제로 봤습니다. 헌데 우리만 유독 그런 인식 전환이 늦었어요.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는 너무 빠른데 인식 전환은 늦어 아노미적으로 큰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선 하루 평균 40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도 많은 사망자 수다. 그럼에도 전 국가적 예방 조치는 미흡한 실정이고, 수많은 개인이 혼자 무기력함과 두려움에 빠져 있다.

스님은 “이 문제를 개인의 나약함으로 봐선 안 된다. 그들의 고통을 먼저 봐줘야 한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타살률은 굉장히 낮은데 자살률은 왜 최고 수준인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극단적 선택에 대한 위험은 특정 세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0~40대 사망 원인 1위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고, 노년층 역시 문제의 심각성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청소년부터 노년층까지 생애주기별 위험 요인을 세밀하게 살피고, 경제적 지원과 정신 건강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성진스님은 말한다.

스님은 특히 반복적으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대학생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 따돌림을 당한 뒤 오랜 시간 고통을 겪어 온 청년이다.

“그 친구는 자기를 ‘우주 먼지’라고 표현하면서 ‘내가 꼭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더라고요. 중·고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해 시작된 고통이 이어지고 있는 거죠. 그 속에서 고립된 채 혼자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다가 자해로 벗어나려고 했어요.”

성진스님은 “흔히 ‘왜 죽냐’고 말하는데, 역설적으로 살고 싶은 거다. 고통에서 탈출하고 싶은데 ‘죽음’이라는 잘못 선택하게 되는 것”이라며 “죽음으로 가기 전에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정신 질환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 또한 바로잡아야 할 부분으로 꼽았다. 심리 치료 및 약물 치료를 통해 우울증이나 트라우마를 완화할 수 있는 만큼, 본인뿐 아니라 가족이 함께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성관사 주지 성진스님이 8일 서울 종로구 도반HC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가졌다. [윤창빈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성관사 주지 성진스님이 8일 서울 종로구 도반HC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가졌다. [윤창빈 기자]

존재 자체의 소중함…“마음 건강도 관리해야”

성진스님은 현대인들이 몸을 관리하는 만큼 마음도 일상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헬스장에 부지런히 가며 몸의 건강은 그렇게 챙기면서 마음에는 그만큼 관심을 갖지 않아요. 병이 난 후에야 비로소 치료하려고 하죠. 운동선수들이 경기를 더 잘하려고 코칭을 받는 것처럼, 마음도 건강할 때부터 상담도 받고 잘 쓰는 법을 훈련해야 합니다.”

연인과의 이별이나 가족의 죽음, 사고나 재난 등과 같은 큰 사건은 언제든지 겪을 수 있고, 특히 마음은 부지불식간에 상처받기 때문에 평소에 관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마음이 원래 쇠처럼 튼튼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하루에 5~10분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나는 어떤 좋은 면을 가진 사람인지 발견하면서 마음 근육을 튼튼하게 길러야 해요.”

불교의 ‘마음챙김(Mindfulness)’도 유용한 방법이다. 스님은 “마음챙김은 감정과 자신을 분리할 수 있는 힘, 일종의 메타인지다. 잠시 멈추고 숨을 쉴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 위기의 순간을 넘길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기자비(Self-Compassion)’ 역시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성진스님은 우리 사회가 성적이나 능력에 대한 칭찬은 많이 하지만, 존재 자체의 소중함을 말하는 데는 인색하다고 지적했다.

“아이는 부모의 목소리를 자기 안에 녹음해 뒀다가 혼자 있을 때 재생한다고 합니다. 평소에 조건부 가치가 아니라 ‘누구도 바꿀 수 없는 너만의 소중함이 있다’는 목소리를 들려줘야 해요. 그래야 힘들 때 자신에게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연결’의 감각 중요…위기자 혼자 두지 말아야

고립감을 느끼는 위기자에게는 ‘누군가 나와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성진스님은 “학교에서 심폐소생술을 가르치는 것처럼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기본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며 “위클래스같은 연계 프로그램도 있지만, 학생과 학생이 서로 도와줄 때 위험이 훨씬 낮아진다”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몸의 건강을 위한 체육 시간처럼 마음 건강을 위한 시간도 생겨서 마음이 넘어졌을 때 일어설 수 있는 회복 탄력성과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친구를 건져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주변에서 자해 흔적이나 죽음에 대한 반복적 언급처럼 위험 신호를 발견했을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혼자 두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성진스님은 말했다.

“(위험 징후가 있을 땐)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합니다. 같이 걷고, 밥을 먹고, 전문가에게 같이 가줘야 해요. 떨어져 있으면 수시로 연락하고, 가족들에게도 알려줘서 관심을 갖게 해야 합니다. 위기 순간을 넘겼더라도 한 번씩 안부를 묻는 것이 좋아요. 연락할 곳이 없는 사람에게 누군가의 전화 한 통은 지푸라기가 될 수 있거든요.”

특히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와 전문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스님은 “자해를 그냥 두면 안 된다. 전문가와 연결해야 한다”면서 “미성년자는 부모도 함께 교육받아야 한다. 대부분을 시간을 부모와 보내고 가족의 영향도 많이 받기 때문에 부모가 어떻게 대처할지를 배워야 훨씬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나아가 극단적 선택 시도자뿐 아니라 그 가족, 소중한 사람을 잃은 유가족과 죽음에 자주 노출되는 경찰관, 소방관 등 고위험군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홀로 짊어지지 않도록 지역사회가 상담과 모니터링을 이어 가야 제2의 위험을 막을 수 있다는 게 성진스님의 설명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성관사 주지 성진스님이 8일 서울 종로구 도반HC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창빈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성관사 주지 성진스님이 8일 서울 종로구 도반HC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창빈 기자]

“국가가 당장 위기 안전망 구축해야”

성진스님은 자살 예방을 코로나19 같은 사회적 위기 대응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봤다. 위기에 빠진 개인에게 버티라고 요구하는 대신, 사회 전체가 ‘마음의 방역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위기 때 예방 접종을 계속하고, 마스크가 없으면 천을 잘라 붙여서라도 예방하려고 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예방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한국의 극단적 선택 예방 정책과 관련해서는 단순히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그치지 말고 실제 현장에서 쉽게 접근하고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스님은 “위기 안전망은 사람이 떨어진 다음 받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애초에 넘어가지 않도록 난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상담 체계와 지역사회 정신 건강 서비스, 복지 기관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적 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국가 차원에서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K-컬처 등이 세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뒷면에는 생명의 불꽃을 스스로 꺼트리려 하는 사회적 질병의 문제가 존재하고 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이면의 문제는 더 많이 나올 겁니다. 국가가 더 빨리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설수록 더 큰 손실을 막을 수 있어요.”

“주변에 도우려는 사람 있어…일단 전화했으면”

성진스님은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연결’의 메시지를 전했다. 스님은 “14명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책을 썼다. 여러분 곁에는 14명의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주위를 조금만 돌아보면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어떻게든지 잡아주려 하는 사람들이 최소 14명은 있으니 일단 두드려봤으면 한다”고 했다.

아울러 한 명에게만 모든 것을 의지하기보다 여러 사람과 연결돼 있기를 권했다.

“전화만 걸면 당신의 고통에 대해 들어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단 상대의 목소리를 듣고, 당신의 이야기를 해 보세요.”


pin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