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2일(현지 시각)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혁신장관회의에 참석한 뒤 CNBC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관세를 예고했다. 관세는 “표적화되고 신중한” 방식이 될 것이라며 “미국에서 생산하면 관세를 내지 않지만, 여기서 생산하지 않으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시장에 들어오기 위해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기업에는 관세를 면제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에는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러트닉 장관은 반도체 관세와 미국 내 제조시설 투자를 연계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이미 이런 방식으로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대만 TSMC가 애리조나에 2650억달러 규모를, 미국 마이크론이 2500억달러 규모를 반도체·메모리 생산에 투자하고 있다며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한 투자 약속이 모두 1조2000억달러에 이른다고 했다. 다음 주 미국 내 200억~300억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 계획이 나올 것이라는 말도 했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과 각국 정부를 상대로 미국 내 생산시설 압박이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발언은 단순히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요구하던 것과는 무게가 다르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7월 마이크론의 신규 반도체 공장 착공식에 참석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미국으로 데려와 공장을 짓게 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는데, 그 사이 압박이 한층 구체화됐다. 한국 기업도 이미 미국에 상당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약 370억달러를 투자해 첨단 파운드리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있고,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달러를 투입해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두 회사는 최근 호남권에 총 800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발표한 상황이라 미국에 추가 투자를 요구받는다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관세 협상으로 상호관세를 15%로 낮췄고, 지난 7월 무역법 301조 관세에서도 한국은 12.5% 수준을 적용받았다. 하지만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 문제는 아직 남아 있다. 대만 역시 미국의 압박 속에 대규모 대미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만큼 한국에도 같은 요구가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관세 대상을 반도체 자체뿐 아니라 컴퓨터·서버 등 관련 제품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관세 부담이 한국 전자·IT 산업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미국의 압박에 휘둘리지 않도록 통상전략을 재점검하고 한국 기업이 불리한 조건을 받지 않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의 반도체 생산기반과 경쟁력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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