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만에 전국 투어로 복귀

류마티스 딛고 다시 무대로

“한때는 교만함 짙었던 가수”

가수 양수경 [연합]
가수 양수경 [연합]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한동안 노래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자유로울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국 제가 다시 하고 싶은 건 노래더라고요.”

1980~199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를 풍미했던 ‘원조 한류’ 디바로 사랑받은 가수 양수경(61)이 오랜 공백을 깨고 컴백했다. 무려 34년 만에 전국 투어 콘서트를 열고, ‘노래하는 사람’으로의 정체성을 세웠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미니스커트를 입어봤다는 양수경은 청아하고 부드러운 음색 그대로 “나를 나타내는 단어는 결국 가수였다”며 지난 26일 기자들과 만나 긴 공백기를 돌아봤다.

34년 만의 전국 투어… “교만함 버리고 공연하는 가수 될 것”

“그땐 교만함이 아주 짙었던 가수였어요.”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사랑은 차가운 유혹’ 등 히트곡을 낸 양수경은 탄탄한 가창력과 맑은 미성으로 당대 여성 가수 전성시대를 연 주역이다.

그의 이력이 화려하다. 1988년 1집 ‘떠나는 마음’으로 데뷔한 이후 몇 년에 걸쳐 공전의 히트곡을 냈고 KBS와 MBC의 10대 가수상을 휩쓸었다. 1990년엔 일본 드라마 주제가 가창으로 레코드 상은 물론 1992년 일본 NHK TV 아시아 5대 스타상, 1992년 ABU 국제가요제 최우수인기가수상 등 해외에서도 활약했다.

그는 “그때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방송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고 누군가 하라고 해서 공연을 했다”며 “지금은 몇 년 동안 내가 먼저 ‘공연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바라왔다”고 말했다.

양수경의 복귀는 무대를 통해 시작된다. 그는 오는 10월 서울 큐브컨벤션센터를 시작으로 단독 콘서트 ‘인연’을 연다. 양수경이 단독 콘서트를 하는 것은 1992년 이후 무려 34년 만의 일이다. 2022년 연말 디너쇼 이후로도 약 4년 만에 오르는 정식 무대다.

그는 “가수는 혼자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공연을 해야 가수이지 않나. 공연을 준비할 수 있는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 이번 기회가 그래서 더 귀하다”고 말했다.

가수 양수경이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YTN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수 양수경이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YTN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돌아오기까진 긴 시간이 흘렀다. 1998년 연예기획사 대표와 결혼, 이듬해 정규 9집 ‘후애(後愛)’를 끝으로 그는 오랜 공백기를 가졌다. 이후 아버지와 여동생, 남편을 연달아 떠나보내는 슬픔이 찾아왔다. 친아들과 여동생의 아이들을 홀로 양육하며 2016년 복귀 전까지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최근 4년간의 공백기 동안엔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았다. 치료를 위해 맞은 스테로이드제 부작용으로 몸이 붓고 활동 의욕도 사라졌다.

그는 “처음엔 잠만 잤고 밖에 나가는 것도 싫었다. 차라리 잊혀지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며 “노래는 하고 싶은데 나가고 싶지 않았다”고 돌아왔다.

그럼에도 결국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노래를 향한 갈망과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 양수경은 “공연하고 싶다고 생각하니 이런 모습으론 안 될 것 같았다“며 ”아침에 눈 뜨면 거울부터 보며 열심히 운동했고, 직접 음식을 챙겨 먹는 등 식이요법을 하며 노래에 매진했다”고 돌아본다. 현재 체력은 70~80% 수준으로 회복됐고, 의욕은 100% 충만하다고 한다.

“건강해지자 ‘그래도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야. 내게는 노래가 있고 가수 양수경이 있지’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어요. 잠시 회피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었죠. 그러기엔 아직 젊고 누가 훼손할 수 없는 꿈도 있으니, 앞으로는 (어떤 난관을 만나도) 절대로 회피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기엔 하루하루가 아까우니까요.”

굴곡 많은 삶....미완의 신곡 ‘다시는 사랑 못 해’ 10월 공개

“제 인생 굴곡이 워낙 화려하잖아요. 그래서 안 부르고 싶었죠.”

컴백은 ‘미완의 신곡’과 함께 한다. 지나온 삶의 여정이 떠올라 차마 부르고 싶지 않은 곡이었다. 당초 이날 신곡을 공개할 계획이었으나,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욕심이 커져 발표를 10월 공연으로 미뤘다.

공개할 신곡 중 하나는 ‘다시는 사랑 못 해’. 이 곡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양수경은 “내 노래에 이별과 아픔을 담은 곡이 많아 몇 년 동안은 밝고 희망찬 노래를 하고 싶었다”며 “인생 굴곡을 자랑하는 세계 대회를 나가면 선두를 차지할 수 있을 텐데, 가수 인생이 가사 따라간다는 이야기 때문에 처음엔 ‘다시는 사랑 못 해’라는 제목이 걸려 안 부르려고 했다”고 웃었다.

선택은 양수경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으로 향했다. 그는 “가사를 보니 오히려 ‘너 아니면 안 돼’, ‘사랑을 하고 싶어’ 이런 내용이더라. 주변에서도 ‘양수경의 목소리에는 이별 노래가 맞는다’는 조언을 들었다”며 “그것도 주어진 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도전하는 것도 좋지만 ‘양수경이 부르는 사랑과 이별 노래’를 받아들이면 더 편하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돌아봤다.

신곡 작업은 정오부터 새벽 1시까지 녹음을 이어가며 완성도를 높였다. 그는 “살면서 매사에 욕심내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이상하게 노래에 관해서는 그 욕심이 안 빠진다“며 ”조금 버거운 노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작업하는 동생이 ‘누나에게 맞는 것을 하라’고 해서 녹음한 데이터를 다 지우고 다시 작업하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34년 만에 전국투어 콘서트를 여는 가수 양수경 [연합]
34년 만에 전국투어 콘서트를 여는 가수 양수경 [연합]

그의 전성기와 비교하면 지금은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앨범 시대를 지나 음원 소비의 시대가 됐지만, 양수경은 실물 앨범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1999년 정규 9집 이후 긴 침묵을 깨고 2016년 미니앨범으로 활동을 재개한 그는 2018년 데뷔 30주년 스페셜 앨범 ‘명작’, 2020년 싱글 ‘사랑하세요’, 2025년 신곡 ‘옛날에 금잔디’ 등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최종 목표는 미뤄졌던 정규 10집 앨범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양수경은 “가수는 노래하는 사람인데 앨범을 내는 것만큼 소중한 게 있을까 싶다”며 “명품이나 보석을 사는 것보다 앨범에 투자할 수 있는 가수이고 싶다.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꾸준히 10집, 11집, 12집을 준비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음악 여정은 지난 몇 해 사이 젊은 세대에게도 닿고 있다. 1990년에 발매된 2집 앨범 수록곡 ‘그대의 의미’는 지난 4월 열린 구찌 애프터 파티에서 선곡되며 재조명받았다. 뿐만 아니라 방탄소년단(BTS)과 뉴진스(NewJeans) 등 K-팝 스타들이 다시 부르며 팬덤 사이에서도 회자됐다. 양수경은 “내 노래인데도 신선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자신이 전성기를 누렸던 1980~1990년대를 “가요계의 르네상스”라며 “내가 다른 가수보다 특별히 뛰어나서라기보다 좋은 시대를 만났고 운이 많이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블랙핑크나 지드래곤(G-DRAGON) 등 후배들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걸 보면 가수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도 자랑스럽다“며 ”일본에서 상을 받을 때만 해도 한국 음악 시장이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밑거름이 된 모든 분에게 감사하며, 나도 누군가 기억해 준다면 감사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오랜만에 설 무대는 양수경에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단지 과거를 추억하는 무대도 아니다.

그는 “추억을 소환하는 데 머물지 않고,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뛰던 당시의 느낌, 어렸을 때의 추억을 관객과 함께 나누는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가왕 조용필의 공연에서 익숙한 전주가 흐를 때 관객이 환호하던 모습은 다시 ‘공연하는 가수’로서 정체성을 찾은 그에겐 큰 영감이었다.

양수경은 “세월이 흘러 편곡과 악기는 바뀌었지만, 원곡이 가진 추억을 훼손하지 않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며 ”난 굉장히 부주의하고 허점 많은 사람이지만, 그 빈 곳을 무대에서 노래하는 걸로 채우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예전엔 잘 보이고 멋있게 보이기 위해 남을 위한 하루를 살았다면, 지금은 온전히 저를 위한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더 늦기 전에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60대까지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를 부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몇 살까지라도, 노래도 삶도 후회하지 않도록 예쁘게 가꾸며 살겠습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