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바람직하지 못해, 2600만원 배상해야”
약정·각서에 ‘경업금지 의무’ 있었지만 위반
기존 학생들에게 연락…학원 옮기도록 유인
법원 “거래질서 문란·학생들 수업권 침해 우려”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근무하던 영어학원에서 퇴사한 직후 400m 떨어진 곳에 경쟁 학원을 차린 강사가 원장에게 26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해당 강사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기존 학생들을 자신의 학원으로 유인하는 등 책임이 무겁다”고 지적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민사5단독 이강민 판사는 원장 A씨가 B강사를 상대로 “5000만원을 배상하라”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지난달 10일 A씨 일부 승소 판결했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A씨는 서울에서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영어학원을 운영했다. B강사는 지난 2023년 1월부터 7개월 간 이곳에서 영어강사로 근무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B강사는 퇴직 후 2년 이내 반경 5㎞ 내 근거리에 취업하거나 동종 학원을 설립할 수 없는 내용이 있었다. 이를 어길 경우 5000만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B강사는 이 약정을 어겼다.
퇴사하자마자 기존 학원에서 400m 떨어진 곳에 영어학원을 열었다. 단순 개원한 것 뿐 아니라 기존 학원에서 가르치던 학생들을 유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B강사는 학생들에게 연락해 영어 공부방법 등에 대해 조언하며 집에서 더 가까운 자신의 학원에 다니게 했다. 실제 적지 않은 학생이 학원을 옮긴 것으로 조사됐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A원장은 지난 2024년 5월, B강사를 찾아갔다. 이곳에서 양측은 각서를 작성했다. B강사는 한 달 내로 학원 문을 닫고, 기존 학생들에게 연락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이를 어길 경우 5000만원과 A원장의 학원이 입은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지기로 정했다.
B강사는 각서의 내용을 또 어겼다. A원장이 약정을 준수할 것을 촉구하는 통고서를 보냈지만 B강사는 무시했다. 현재도 같은 장소에서 사업자등록을 마친 뒤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A원장은 B강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A원장은 “B강사가 근로계약서·각서 내용대로 5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A원장 측 손을 들어줬다.
1심은 “B강사가 퇴사한 직후 400m 떨어진 장소에서 영어학원을 열었으므로 약정상 경업금지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B강사의 행위는 단순히 강사로서 근처 경쟁학원에 취직한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쟁학원을 차린 것”이라며 “개원 이후 기존 학생들을 유인까지 함으로써 위반 행태가 무겁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B강사가 약정을 지켰다면 A원장의 학원에 다니던 학생들이 학원을 옮기는 대신 기존 학원에 계속 다녔을 수 있다”며 “해당 약정은 학생 이탈을 방지하고 매출액을 유지하고자 하는 A원장의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 과정에서 B강사는 “해당 약정·각서가 강박(남의 뜻에 억지로 따름)에 의해 작성됐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공포심에 각서를 작성했다고 볼 수 없고 증거도 없다”며 기각했다.
아울러 “실제 손해 발생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라거나 “본인이 운영한 학원은 성인 대상 영어회화 전문이라 A원장 학원과 경쟁관계에 있지 않다”고 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실제 손해 발생이 증명될 필요가 없고, A원장에게 손해가 발생한 사실 자체도 넉넉히 인정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A원장 학원에 다니던 학생들 다수가 B강사의 학원으로 옮겼다”고 지적했다.
B강사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주장도 했지만 법원은 “이러한 제한을 두지 않을 경우 경쟁학원들이 서로 유명 강사를 빼내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며 “학원업계의 거래질서가 문란해지고 학생들의 수업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1심 재판부는 손해배상액은 2600만원으로 다소 줄였다. 그 이유에 대해 “실제 A원장에게 발생한 손해액이 5000만원 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1심은 “배상액을 지나칠 정도로 과도하게 감액하면 경업금지약정 등이 무력화될 수 있다”며 “이는 계약 존중의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B강사가 지난달 20일에 항소해 2심이 서울북부지법에서 다시 열릴 예정이다.
notstrong@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