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곳간에 뜻밖의 돈이 쌓이고 있다. 반도체 초호황으로 초과세수가 20조원 안팎에 이르고, 내년 국세 수입이 50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세수 증가분을 미래대응기금에 적립해 청년, 성장동력, 지방, 인재 등 4대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방향은 분명히 옳다. 미래학의 오랜 화두는 현재의 의사결정 구조가 미래세대를 체계적으로 배제한다는 데 있다. 미래세대는 투표권도, 로비할 목소리도 없다. 민주주의의 시계는 선거 주기에, 재정의 시계는 회계연도에 갇혀 왔다. 그 결과 편익은 현재로 앞당겨지고 부담은 미래로 미뤄져 왔다. 이러한 점에서 일시적 초과 세수를 단기 지출로 소진하지 않고 미래 투자로 돌리겠다는 발상은 보기 드문 세대 간 형평의 선언이다.
그러나 선언이 제도가 되려면 위험부터 직시해야 한다. 반도체 세수는 안정적 구조 수입이 아니라 경기순환에 따른 일시적 재원이다. 이를 바탕으로 항구적 지출 사업을 늘리면 호황이 끝난 뒤 기금은 고갈되고 사업은 국채에 의존하게 된다. 일반예산보다 감시가 느슨한 기금이 상시 추경의 우회로가 되거나, 선거를 앞두고 현금성 지원과 선심 사업에 동원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참고할 선례가 있다. 노르웨이는 북해 유전의 횡재를 국부펀드로 제도화하면서 원금은 미래세대의 자산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운용 전 과정을 의회와 국민에게 공개했다. 프랑스도 미래 투자프로그램을 통해 대학, 연구개발, 신산업에 투자하되 독립적 심사와 엄격한 성과평가로 투자의 질을 담보했다. 기금 성공의 조건은 돈의 크기가 아니라 제도의 단단함에 있다.
무엇에 투자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인공지능(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 자체보다 이를 개발하고 활용해 가치를 만드는 인재에게서 나온다. 특히 AI가 초급 직무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가장 직접적인 충격을 받는 계층은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청년이다. 청년들이 경험을 쌓고 숙련을 형성할 경력 사다리의 첫 칸을 잃는다면, 이는 개인의 좌절을 넘어 미래 핵심 인재를 키우지 못하는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기획예산처가 제시한 4대 투자 방향은 시의적절하다. 출생아 수가 25만 명 안팎으로 줄어든 시대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잠재력 지닌 인재로 키워야 한다. 청년 일자리와 창업, 전환기 노동자의 재훈련, 지역산업 수요와 연계된 교육·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 인재가 지역에서 배우고 일하며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기금이 이름값을 하려면 세 가지를 특별법에 명문화해야 한다. 추가 세수의 기준과 사용 범위를 객관적으로 규정하고, 모든 사업에 미래세대 영향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 정부 임기와 분리된 운용위원회를 두고 국회의 정례 보고와 감독도 강화해야 한다. 이는 기금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바뀌어도 미래 투자를 지속하게 만드는 신뢰의 장치다.
반도체가 가져온 세수는 언젠가 줄어든다. 그 뒤 무엇을 남기느냐가 국가의 실력이다. 기금이 미래세대와 맺는 사회적 계약이 될지, 정치적 필요에 따라 꺼내 쓰는 저수지가 될지는 향후 입법 설계에 달려 있다. 그 설계의 중심에 선 기획예산처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지금이야말로 세대 간 형평성을 높이는 제도를 마련할 절호의 기회다.
서용석 카이스트(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y2k@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