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참여자 아닌데 불법 시술

논란 당시 병원 “고개 숙여 사과”

잊혀지자 회장 “허위 사실” 기사삭제 소송

법원서 패소…“회장 지위 이용해 시술”

분당차병원. [차병원 제공]
분당차병원. [차병원 제공]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산모가 기증한 제대혈을 피부미용 목적으로 불법 시술해 거센 비판을 받았던 차병원그룹 차광렬 회장이 관련 보도에 “허위 사실”이라며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차병원은 비판 여론이 들끓었을 때 불법 시술 의혹을 인정하며 사과했지만 사건이 잊혀지자 소송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부장 김진영)는 차 회장이 한 방송사를 상대로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침해했다”며 낸 기사삭제 소송을 지난달 19일 차 회장 측 패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관련 보도가 허위 사실이 아니며 차 회장은 공적 인물에 해당하므로 공익에 관한 내용이라고 판단했다.

제대혈은 분만 후 아기의 탯줄에서 나온 혈액을 말한다. 미용이나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대혈은 연구용으로 기증한 경우 치료·연구 목적으로 질병관리본부의 승인 하에 투여할 수 있다.

차병원 소유주인 차 회장과 부인, 그의 아버지 등 일가는 지난 2016년 12월, 연구 참여자가 아닌데도 제대혈 주사를 맞은 것으로 밝혀졌다. 논란 초기 의혹을 부인하던 차 회장은 보건복지부 조사가 발표되자 불법 투여를 인정했다. 사과문을 통해 기증자들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비판 여론이 들끓었지만 정작 차 회장 일가는 처벌을 피했다. 당시 의료법에 따르면 불법 시술을 ‘행한’ 의료인만 처벌할 수 있을 뿐 ‘받은’ 사람에 대해선 처벌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처벌 조항이 새롭게 생겼다. 결국 진료기록을 누락한 제대혈은행장과 차병원 의사들만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다.

헤럴드경제가 취재한 결과, 차 회장은 해당 사건이 잊혀진 지난해 8월, “자신과 관련된 보도가 허위사실”이라며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차 회장 측은 “관련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해당 보도는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침해하고 있으므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차 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허위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1심은 “차 회장 등은 항노화 연구 대상자가 아니었는데도 부적격 하에 제대혈을 투여받았다”며 “이러한 행위는 제대혈법을 위반한 행위로 불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차 회장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은 당시 구 제대혈법에 처벌 규정이 없었다는 사정이 고려된 것”이라며 “이후 개정되면서 부적격 제대혈을 투여받는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도 새롭게 생겼다”고 짚었다.

아울러 “해당 기사는 일반인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제대혈의 관리를 다루고 있다”며 “차 회장은 국내 유명 그룹의 회장으로 공적 인물에 해당할 여지가 많다”고 밝혔다.

1심은 “차 회장이 차그룹 회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제대혈을 시술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할 때 해당 기사의 내용은 공익에 관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차 회장이 지난 12일 항소해 2심이 열릴 예정이다.


notstr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