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중학교서 40대 교사 숨진채 발견

학생 가족으로부터 민원 폭탄 시달린 정황

유서엔 “가족·피해 학생에 미안하다” 남겨

경찰, 교육청 구체적 사망 경위 조사하기로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들이 23일 제주도교육청 앞 주차장에 숨진 중학교 교사 분향소를 설치하고 있다. [연합]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들이 23일 제주도교육청 앞 주차장에 숨진 중학교 교사 분향소를 설치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제주의 한 중학교 교사가 학교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해당 교사는 학생 가족 측의 밤샘 항의 민원에 시달려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교사 노조에서는 ‘교사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비판과 함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23일 제주교육청·제주경찰청에 따르면 22일 0시29분쯤 제주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40대 남성 교사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교무실에서 유서를 발견한 교사의 가족이 신고했다.

신고에 출동한 경찰이 약 20분 만에 학교 본관 뒤편 창고에서 해당 교사를 발견했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교무실에 남겨진 유서에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학생에게 미안하다” 등의 짧은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지도하던 학생 가족에 ‘항의 민원’ 시달리던 교사…여러 차례 사과에도 ‘밤샘 함의’

사망한 교사는 생전 자신이 지도하던 학생 가족으로부터 항의 민원에 시달렸던 것으로 파악됐다. 중학교 3학년 담임이었던 교사는 학칙 위반행위를 생활지도 하던 중 한 학생에게 비하 발언을 했고 해당 학생이 가족에게 알리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가족 측은 이를 두고 ‘폭언 교사’라고 학교와 교육청에 주장했고 교사는 가족 측에 여러 차례 사과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 교육계 관계자는 “해당 학생 가족 측은 제주도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한 이후에도 교사의 개인 휴대 전화로 밤새 항의 민원을 넣었다”라며 “이외에도 ‘아이가 당신 때문에 학교 가기 싫어한다’·‘왜 폭언을 하고도 교사를 하느냐’ 같은 항의를 했다”고 전했다.

제주교육지원청은 해당 민원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19일 학교 측에 전달했고 이 과정에서 학교 측은 학생 가족 측과 연락하려 했으나 닿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교육계는 일제히 학교 민원대응 시스템을 비판했다. 교육부는 2023년 ‘서이초 사건’ 발생 이후 ‘교권회복 보호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했으나 학교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제주교사노조 관계자는 “학내 교장 직속의 민원대응팀 같은건 생기지 않았다”라며 “서이초 사건 이후에 교권 침해 개선은 사실상 바뀐게 없다”라고 비판했다.

23일 오전 제주시 한 장례식장에 전날 제주시 모 중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된 40대 교사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
23일 오전 제주시 한 장례식장에 전날 제주시 모 중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된 40대 교사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

제주교육청 ‘사망 교사 분향소’ 마련·마음건강 지원…경찰 구체적 사망 경위 조사

경찰은 교사가 사망에 이르기까지 협박 또는 괴롭힘이 있었는지 구체적인 사망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한편 제주도교육청에는 사망한 교사를 위한 분향소가 마련됐다. 제주도교육청은 이날부터 오는 25일까지 해당 중학교 교사를 추모하는 분향소를 교육청 앞마당에 마련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분향소는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주말인 24일과 25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추모를 원하는 교직원·학생·도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교사 커뮤니티에서는 고인을 추모하는 글이 쏟아졌다. 또 소속 중학교를 졸업한 제자들이 “선생님, 감사했습니다”·“선생님 덕분에 학교생활이 재밌었습니다” 등의 글도 전교조 제주지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기고 있다.

김광수 제주교육감은 강릉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등 외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조기 복귀했다. 김 교육감은 교육청 간부 공무원들과 함께 분향 하고 고인의 빈소를 방문해 조문한 뒤 유가족을 위로했다.

김 교육감은 입장문을 통해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제주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으로서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면서 “교단에서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헌신을 다 하시다 유명을 달리하신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이어 “교사들과 학생들의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 정서회복 지원에 최선을 다하고 필요한 경우 전문가 상담 및 심리치료 지원도 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brunc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