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진입, 치매환자 100만명 등 한국의 ‘노령 리스크’가 심화되고 있다. 급변하는 인구 사회학적 흐름에 안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차기 정부 국정 운영에서도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특히 가구의 경제적 부담을 낮추고 사회적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보험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본지는 국민들의 커져가는 노후 건강 비용 부담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보험의 사회적 역할 확대 중요성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재명·김문수 등 대선후보 주요 공약에 ‘노인 돌봄’

100만명 치매 환자와 장기요양보험 적자 동시에

치매·간병보험 1년 새 37.5%↑…돌봄 수단 준비

요양병원에만 월 수백씩…사적간병비 年 10조 전망

장기요양보험 적자 쌓이고, 요양 인프라 구축 열악

‘요양사업 진출’ 보험사, 공공 한계 속 해결사로 나서

# 70대 초반 김상혁 씨는 최근 몇 년 새 기억력 감퇴가 심해지고,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생길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병원에서 받은 임상치매평가척도(CDR) 검사 결과는 4등급으로, 타인의 도움 없이는 생활이 어려운 심각한 상태였다. 다행히 김 씨는 10년여 전에 가입했던 보험에서 질병후유장애 담보를 통해 보험금 50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가족들은 “치매도 버거운데, 경제적인 부담까지 겹쳤다면 정말 막막했을 것”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 사회가 지난해 말 초고령화에 접어들면서 급격한 인구 구조의 변화가 각종 통계로도 드러나고 있다. 내년 치매 인구는 사상 처음 1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이며, 노인요양을 지탱해야 할 공적 보험 재정은 적자 전환이 예상된다. 공공의 힘만으로 돌봄 수요를 충당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 민간 보험시장이 안전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한국 사회가 지난해 말 초고령화에 접어들면서 급격한 인구 구조의 변화가 각종 통계로도 드러나고 있다. 내년 치매 인구는 사상 처음 1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이며, 노인요양을 지탱해야 할 공적 보험 재정은 적자 전환이 예상된다. 공공의 힘만으로 돌봄 수요를 충당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 민간 보험시장이 안전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헤럴드경제=박성준·정태일 기자] 한국 사회가 초고령화 시대에 진입하면서 안정적인 노후 돌봄이 국가 전체의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내년이면 치매 환자 100만명을 돌파하고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이 적자로 돌아서는 위기가 동시에 찾아올 전망이다.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등 모두 간병비 부담 완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국가 부채가 산더미처럼 늘어나는 상황에 재원 마련이 공약의 최대 난제로 꼽힌다. 이에 따라 개인과 정부의 부담을 덜기 위해 민간 보험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건강한 노년과 삶의 질 유지를 위해 지난해 한해 동안만 치매·요양 보험에 1000억원에 육박하는 보험료가 납입됐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를 겪은 일본도 민간 보험이 노후 돌봄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도 보험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21일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생명·손해보험사 합산 치매·장기간병보험 초회보험료는 963억2500만원으로, 1년 전(700억3000만원)보다 37.5% 증가했다. 전체 누적 보험료는 3조2000억원에 달한다. 치매·간병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확대되면서, 민간 보험이 ‘돌봄 대비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판매되는 치매·간병 상품은 대부분 정액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구조여서, 실제 돌봄 비용을 장기적으로 감당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액형 상품 외에도 치매 상태가 지속되면 매년 생활자금을 지급하거나, 치매보다는 약한 경도인지장애 단계까지 보장 범위를 확대한 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치매·간병보험 수요가 갈수록 커지면서 시장 활성화가 전망된다”며 “앞으로 다양한 서비스가 결합한 형태의 보험도 출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간 치매·장기요양보험 초회보험료 추이.
민간 치매·장기요양보험 초회보험료 추이.

치매는 늘고, 가족 돌봄은 줄고…‘간병 지옥’ 어쩌나

이처럼 민간 치매·간병보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한국의 인구 구조 변화에 있다. 한국은 지난해 말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며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가기까지 한국은 7년밖에 안 걸려 일본(10년), 미국(15년), 영국(50년) 등 주요 선진국 대비 빠른 속도다. 특히 독거노인 비중(2015년 32.9%→2023년 37.8%)은 증가하는 반면, 부모 부양 인식(2006년 63.4%→2022년 19.7%)은 갈수록 줄고 있다. 요양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국민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런 흐름 속에 노후 돌봄 부담을 가장 크게 키우는 변수 중 하나가 바로 치매다. 보건복지부 치매역학조사에 따르면 국내 치매 환자는 올해 97만명, 내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후로도 치매 환자는 꾸준히 증가해 2044년에는 2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도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으며, 고령화가 가속화될수록 이 비율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국민의 주머니 사정은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2014년 처음 3만 달러를 돌파한 이후 11년째 정체 상태다. 반면, 간병과 치매 치료에 드는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예컨대 노인을 전문으로 돌보는 요양병원에 부모를 모실 경우 매달 150만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 이 외에도 비급여 항목인 간병비를 비롯해 식비, 상급 병실 이용 등에 따라 50~100%의 본인부담금이 추가된다. 결국 다달이 요양·간병비에만 수백만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셈이다. 만약 부모가 치매를 앓고 있다면 연간 3000만원이 넘는 경제적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이렇다 보니 올해 환자·보호자가 사적으로 지출하는 간병비만 10조원을 웃돌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간병 지옥’이라는 말이 돌 정도다.

“간병비 건보 적용”…李도, 金도 고령사회 대응 강조

21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노인 돌봄이 사회 복지 핵심 공약으로 배치됐다.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 등 여야 가릴 것 없이 요양병원 간병비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을 강조하고 나섰다. 노인 돌봄 문제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전반에 깔려 있는 것이다.

실제로 두 후보는 모두 요양병원 간병비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해, 월 수백만원의 부담을 줄여나가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김 후보는 가족 간병 시 최소 월 50만원 지급, 65살 배우자는 100만원 지급 등을 함께 제시했다. 연금 관련 공약도 핵심 공약 중 하나다. 근로소득이 있는 노년층이 국민연금을 덜 받게 하는 제도를 고치겠다고 공약했다. 김 후보는 관련 제도 폐지를, 이 후보는 단계적 축소를 약속했다.

아울러 이 후보는 어르신 돌봄 국가책임제를 통해 통합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을 내놨으며, 김 후보는 공공일자리에서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치매 관련 주간보호서비스·주치의·안심공공주택 등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장기요양 재정·시설 모두 위태…공공 돌봄 시스템 한계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 전망.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 전망.

차기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폭증하는 돌봄 수요에 비해 취약해진 공공 시스템 재무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다. 노인 장기요양보험의 재정 악화가 대표적인 예시다. 장기요양보험은 고령자와 노약자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공적 사회보험으로, 2008년 도입 이후 비교적 안정적인 재정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노인 인구 급증과 수급 확대로 재정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인정자는 116만명으로, 최근 5년 새 35.8% 증가했다. 신청자 수는 148만명에 이르렀고, 급여 비용 중 공단 부담금은 14조7675억원으로 2019년(7조7363억 원)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르면 내년 장기요양보험 재정이 적자로 전환되고, 6년 뒤인 2031년 누적 준비금이 모두 소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정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지만, 요양시설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전국의 장기요양기관(시설·재가) 3만1281곳에서 장기요양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여력은 67만6019명이다. 하지만 실제 기관에 입소해 있는 장기요양 인정자는 82만5514명으로, 이미 수용 여력을 초과했다.

열악한 기반 시설 속에 상당수 요양시설이 영세한 개인사업자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서비스 수준 편차가 크고 인력 부족과 과중한 업무, 낮은 임금으로 인해 요양보호사 이탈이 심각하다. 이는 노인학대나 방임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관리·감독이 허술한 틈을 타 전체 요양시설의 90% 이상에서 부당 급여 청구가 적발되기도 했다.

해결사로 민간 보험사 등판…“제도 지원 따라야”

이렇듯 공적 돌봄 시스템만으로는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령화 위험에 대비해 온 보험사들은 요양사업에도 속속 진출하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며 요양사업은 보험사의 본업과도 맞닿은 ‘고객 생애 주기 관리’의 핵심 영역이기 때문이다.

KB라이프와 신한라이프는 각각 요양사업 자회사인 KB골든라이프케어와 신한라이프케어를 운영 중이며, 하나생명도 금융당국 인가를 받아 자회사 출범을 준비 중이다. 삼성생명은 연내 구체적인 요양사업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그러나 민간 보험사의 요양사업 확대에는 제도적 한계가 명확하다. 현행법상 요양시설 설치자는 토지와 건물을 모두 소유해야 하며, 특히 수도권과 같이 부동산 가격이 높은 지역에서는 이 요건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결국 요양 기반 시설 확충의 속도를 늦추고, 보험사 입장에서 고령층 대상 비즈니스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달리 해외에선 보험사 등 민간 자본이 요양서비스 확충의 핵심 주체로 활발히 참여하는 등 공공 시스템을 보완하고 있다. 일본은 52만 개 이상의 고령자 시설을 민간 주도로 확충했으며, 입소율은 국내(2.0%)의 두 배가 넘는 5.2%에 이른다. 중국은 보험사와 대기업이 실버타운을 운영하며 종신보험 고객에게 입주 혜택을 제공하고 있고, 미국은 독립형부터 연속보호형까지 다양한 유형의 실버타운을 민간에서 공급 중이다. 싱가포르는 병원, 주거시설, 상가가 결합한 복합 단지를 정부와 민간이 공동 운영하며, 주거와 지역 사회 통합 돌봄을 연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민간 자본의 참여가 필연적인 흐름이라면, 이를 건강하게 설계할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송윤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제도적 환경과 시장 구조를 고려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민간 자본이 요양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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