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목은 “건강 이유”…대선국면 부담 느낀듯

이창수 중앙지검장[연합]
이창수 중앙지검장[연합]

[헤럴드경제=윤호 기자] 김건희 여사를 불기소 처분한 일로 탄핵소추됐다가 복귀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과 조상원 4차장검사가 복귀 두 달여만에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조기대선을 불과 2주 남은 시점에 전국 최대 규모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의 수장과 특별수사를 지휘하는 4차장이 나란히 사직의사를 밝힌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지검장은 전날 건강상 이유로 사직의 뜻을 밝혔다. 이 지검장 아래에서 특별수사를 지휘해온 조상원 4차장도 함께 사의를 표명했다. 이 지검장은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퇴직일까지 선거범죄 대응 등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뜻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퇴직은 법무부의 사직서 수리 절차 등을 거쳐 확정되며, 퇴직 예정일은 대선 하루 전인 다음 달 2일이다. 이에 대해 심우정 검찰총장은 “검찰은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당초 이 지검장은 탄핵소추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돼 업무에 복귀한 즉시 사의 표명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중앙지검이 윤 전 대통령 부부가 연루된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의 공천 개입 및 여론조사 조작 의혹 등 주요 현안 사건을 수사하는 점을 고려해 사의 표명 시점을 고민해왔다고 한다.

이 지검장은 탄핵소추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지만, 중앙지검 주요 현안이 어느 정도 정리됐다고 판단해 이날 사의를 표명했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조 차장은 “탄핵(심판)에서 (헌법재판관) 8대0(기각)으로 무고함이 밝혀졌고, (복귀한 뒤 현안 수사가) 어느 정도 안착이 됐다고 생각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표면상 이유와 달리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유력시되는 상황에서 재기수사가 결정된 김 여사 사건처리 등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부담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 지검장은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한 뒤 모두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조 차장은 이중 도이치모터스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검찰은 김 여사 계좌가 주가조작에 동원된 건 맞지만, 김 여사가 주가조작 사실을 인지했다고 볼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국회는 무혐의 처분이 부당할 뿐만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제3장소’에서 대면조사를 진행하는 등 특혜를 줬고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고의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이 지검장과 조 차장, 실무를 책임진 최재훈 반부패수사2부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헌재는 3월 13일 이 지검장 등이 김 여사 수사 과정에서 재량권을 남용하지 않았다며 국회의 탄핵소추를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다만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서울고검이 지난달 고발인인 최강욱 전 의원의 항고를 받아들여 재수사 중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대검 대변인을 했던 이 지검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뒤 문재인 정부와 이 후보를 향한 수사를 지휘하기도 했다. 2022년 7월부터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으로 있으면서 이 후보의 백현동·성남FC 사건을, 이듬해 7월 전주지검장으로 이동한 뒤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특혜 채용 의혹 수사를 지휘했다.

이들의 퇴직이 확정되면 서울중앙지검은 새 수장이 취임하기 전까지 다시 대행 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이 지검장과 조 차장 등의 직무가 정지됐을 때 지검장의 업무는 박승환 중앙지검 1차장검사가 맡았고, 반부패수사부 등을 총괄하는 조 차장의 업무는 공봉숙 2차장검사와 이성식 3차장검사가 분담했다. 중앙지검은 명태균 씨 사건 외에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수사, 이미 기소된 이 후보의 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사건, 위증교사 사건 등 재판의 공소 유지를 맡고 있다. 지검장 등이 공석이돼 주요수사와 공소 유지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들에 대한 사직서 수리 여부는 법무부가 최종 결정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통상의 경우 사의 표명후 공수처와 경찰 등에 해당인물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지 조회하고 대검에서도 징계사유가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며 “검사가 징계를 면하기 위해 사직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해당 사안만 없으면 퇴직 시점 등에 큰 변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헌정사상 최초로 검사 신분으로 탄핵 소추됐던 안동완 법무부 법무자문정책관도 최근 사의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당선이 유력한 이 후보가 ‘검찰개혁’을 주요공약으로 내건 6·3 조기 대선을 전후해 검사들의 사직 행렬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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