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인덱스 40년만 최악…트럼프 취임 후 지속적 하락

유럽 등 美 동맹국도 달러 의존도 줄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국 달러 지폐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국 달러 지폐 [로이터]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오락가락하는 관세 전쟁에 대한 불신으로 탈(脫)달러화가 가속화되면서 기축통화인 달러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이에 유럽 등 미국의 동맹국에서도 달러 이탈 움직임이 확산하며 구조적인 달러 약세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유로화 등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인덱스(DXY)는 17일(현지시간) 99.38을 나타냈다. 트럼프 취임 이후 약 3개월간 거의 지속적으로 하락해 2022년 4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이는 올해 들어 달러화 가치가 8% 넘게 급락한 것으로 40년 만에 최악의 기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8일 달러 가치 하락에 달러 공급 안전망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크 사이드너 핌코 최고운용책임자(CIO)는 “미국이 자초한 구조적인 달러 약세가 시작됐다”며 “관세가 미국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 재점화를 불러오며 미국 자산에 대한 투자에 역풍이 된 것이 달러 매도세의 첫 번째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적 정책 전환은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미국 투자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 금융 당국자들 사이에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달러 공급 정책에 계속 의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네덜란드 라보뱅크의 제인 폴리 외환 전략 책임자는 “최근 몇 달 사이 미국과 유럽의 동맹 관계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유럽 내에서 달러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정책 발표 이후 금융시장 혼란이 지속되자 90일 유예를 발표했지만 투자자들이 여전히 긴장하고 있다”며 “일반적으로 금융 및 경제 분쟁이 발생할 때 달러 가치가 강세를 보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급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 공조에 등을 돌리고 각국과 일방적인 거래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무기화’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 시장 불안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금리 인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비판하며 해임 가능성까지 암시했다. 독립기구로서 달러 기축 체제를 책임지는 FRB의 독립성마저 위협받는 상황은 ‘탈달러’ 논의에 더욱 불을 지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

전 세계를 강타한 ‘트럼프 쇼크’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에는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FT는 보도했다.

첫 번째는 달러 하락세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아폴로의 토르스텐 슬록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현재 미국 주식 19조달러, 미 국채 7조달러, 미 회사채 5조달러 규모를 보유하고 있다”며 “이들 투자자 중 일부라도 자산 축소에 나선다면 달러 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방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짚었다.

둘째는 이러한 자금 유출이 가속화될 경우 달러의 글로벌 경제 및 금융 시스템에서의 독보적인 역할마저 약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달러 가치는 역사적으로도 오르내림을 반복해 왔고, 그 지위에 도전하려는 움직임도 끊이지 않았지만,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은 줄곧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과 투자자들은 이번 ‘트럼프 쇼크’가 달러 지배 체제의 종말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PGIM 픽스트 인컴의 그레고리 피터스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국은 지난 100년간 기축통화 지위의 혜택을 누려왔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100일도 채 되지 않아 무너지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탈달러 움직임은 이미 중국·러시아·브라질 등이 속한 신흥국협의체 브릭스(BRICS)에서 이뤄지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이 러시아의 달러 자산을 동결하는 것을 본 중국 등은 미국 국채 보유량을 서둘러 줄이기 시작했다. 최근 3년간 중국과 브라질은 미 국채 보유량을 10~20% 줄였고, 최근 1년 사이에는 인도와 사우디아라비아도 축소에 나섰다.

시장 일각에서는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지난해 발표했던 ‘마러라고 합의’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약세를 유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으나, 이처럼 유도책을 내놓지 않아도 트럼프 정권의 정책 및 외교 기조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달러 약세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mokiy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