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저사양 AI칩까지 중국 수출 ‘전면 봉쇄’

“미·중 사이 낀 엔비디아 최대 협상카드” 희생양

다음주 예고 반도체 관세에 수출 제한까지 타격

반도체주 일제 폭락…엔비디아 -6.8%·AMD -7.3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모습.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모습. [로이터]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뉴욕증시 상승세를 주도했던 반도체 기업이 미국과 중국 간 관세전쟁의 최대 희생양이 됐다. 미국이 인공지능(AI) 칩 선두 주자인 엔비디아 칩의 중국 수출을 전면 봉쇄했고, 다음주 반도체 관세도 예고하자 관련 기업도 줄줄이 실적 악화를 예상했다. 반도체 주가는 관세 우려로 큰 폭으로 하락했다.

H20 수출길 막히자 반도체주 일제히 폭락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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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미 상무부가 전날 엔비디아의 AI 칩인 H20과 AMD의 MI308 등을 새로운 중국 수출 허가 품목으로 포함하자 관련 기업들도 실적 기대를 낮췄다. 엔비디아는 해당 조치로 회계연도 1분기에 55억 달러(약 7조8567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엔비디아 경쟁자인 AMD는 MI308의 중국 수출길이 막히면서 8억 달러(약 1조 1312억원)의 손실을 예상했다.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도 이날 투자자들에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가 ‘새로운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있으며 이는 수요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다음 분기 실적을 조정한다고 밝혔다.

관련 주가도 크게 떨어졌다.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한때 전날보다 10%까지 떨어졌다가 6.87% 내린 104.4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AMD 주가도 전장보다 7.35% 하락하는 등 엔비디아보다 낙폭이 컸다. 반도체 관련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4.10% 하락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기술주까지 동반 하락하면서 자체 추산하는 ‘블룸버그 매그니피센트 7(빅테크 기업) 지수’는 올해 들어 20% 하락했다”며 “2024년에는 67% 급등했었다”고 전했다.

반도체 관세에 ‘바이든식 수출 규제’ 더할 듯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으로 촉발된 미·중 갈등 국면에서 오히려 미국의 ‘아픈 곳’만 노출됐다는 진단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 국채 금리 급등으로 촉발된 금융시장 불안 앞에서 결국 눈을 깜빡였다”며 “이번 사태로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발견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로이터·AFP]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으로 촉발된 미·중 갈등 국면에서 오히려 미국의 ‘아픈 곳’만 노출됐다는 진단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 국채 금리 급등으로 촉발된 금융시장 불안 앞에서 결국 눈을 깜빡였다”며 “이번 사태로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발견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로이터·AFP]

반도체 관세가 예고된 상황에서 엔비디아 수출 제한까지 덮치자 반도체 업계는 초비상 상태다. AI 칩 수출 제한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대중국 규제로 활용하던 방식이다. 고성능 칩은 미국 정부의 규제를 받았고, H20 칩은 엔비디아가 중국에 제공할 수 있는 최고급 사양의 AI 칩이었다. 엔비디아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기존 H100 칩에서 성능이 낮아진 H20 칩을 제작해 중국에 수출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마저도 막으면서 수출길이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엔비디아는 이제 AI 개발을 둘러싼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 두 초강대국 사이에 끼이게 된 셈이 됐다”며 “AI 컴퓨팅 분야에서 엔비디아 입지는 매우 강력해 하위 사양 칩조차도 수요가 넘쳐나지만, 미·중 간 무역전쟁에서 이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수출 제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으로 이미 큰 타격을 입은 미국 반도체 기업들에 또 다른 악재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 증권 수석 주식분석가는 “이번 조치는 백악관이 발사한 경고탄과도 같다”며 “중국 시장은 이제 엔비디아와 다른 기술기업들에 ‘진입 금지’ 표지판이 붙은 셈”이라고 말했다.

미국 투자 확대했지만…엔비디아, 수출 제한 못 피해

앞으로도 반도체 산업에서 미·중 관세전쟁 여파는 계속될 전망이다. WSJ은 이번 수출 제한이 엔비디아 미국 투자 발표가 이뤄진 직후에 이뤄진 점을 주목했다. 해당 매체는 “이 규제 강화 조치가 발표되기 하루 전 엔비디아가 미국 내 AI 슈퍼컴퓨터 제조를 위해 최대 5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는 점”이라며 “이는 미국 내 제조업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고조되는 무역 전쟁은 미국 최고의 반도체 기업이 중국에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데 있어 결코 좋은 환경은 아니다”라며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5000억 달러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짚었다.

여기에 조만간 반도체 관세까지 발표를 앞두고 있다. 지난 1일부터 미국 상무부는 지난 1일부터 구형 반도체, 인공지능(AI) 개발에 필요한 핵심 반도체 등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반도체 수입에 대한 영향을 조사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해당 조사를 기반으로 관세 등 제한 조치를 실시할 방침이다.

레이먼드 제임스의 분석가 에드 밀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계속해서 강화하고 있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며 “향후 몇 주 내에 미국 정부가 중국으로의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에 대해 추가 규제를 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binn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