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호황을 맞았던 중국 한류 시장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중국이 한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 결정 이후 자국 내 한류 콘텐츠에 보복성 규제를 가하는 움직임이다. 현지에서 최고 대우를 받았던 국내 특A급 배우의 신규 방송과 광고 계약도 어려운 분위기다. 중국 한류 시장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지난 2일 오후 중국의 SNS 웨이보 실시간트렌드에 ‘중한 문화교류 중단’, ‘한류스타 방송금지’ 라는 키워드가 노출됐다. 해당 키워드를 클릭하면 현지 네티즌들이 한국의 인기 배우와 가수들의 사진,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의 한국 연예인 활동 규제 보도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국내 엔터업계에서는 광전총국이 한국 스타와 콘텐츠의 규제를 담은 비공식 지침을 각 위성 방송사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했다. 해당 지침에는 ▶ 빅뱅·엑소 등 아이돌의 중국 활동 금지 ▶ 신규 한국문화산업 회사 투자 금지 ▶ 한국 아이돌그룹 1만 명 이상 공연 불허 ▶ 기 계약 제외한 드라마 등 한국방송물(합작포함) 사전 제작 금지 ▶한국배우 출연 중국 드라마 제작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독도 이슈로 일본 시장이 문이 닫힐 즈음 등장한 한류시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본으로 콘텐츠 수출이 약 70% 이상을 차지할 때 정치권의 이슈로 한국배우와 드라마 등이 퇴출당할 당시 중국 시장의 문이 열렸다”며 “이후 엔터업계는 중국 시장에 사활을 걸었는데 또 한 번 정치권 이슈로 문화시장이 타격을 입게 됐다”며 ‘제2의 일본’ 사태를 우려했다. 중국 시장의 경우 일본 한류가 닫힐 때보다 3~4배의 타격을 불러올 규모다.
현재 업계에선 구체적 사항에 대한 엇갈린 반응을 내놓고 있다. 배우 유인나, 지창욱 등이 출연드라마에서 퇴출됐고, K-팝스타들의 중국 활동이 금지될 것이라는 부분에 대해 각 소속사에서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인나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에선 “아직 변화된 상황은 없다. 하지만 현지 분위기가 계속 바뀌고 있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유인나는 현재 중국 4대 위성방송사인 후난위성TV의 28부작 드라마 ‘상애천사천년 2 : 달빛 아래의 교환’(相愛穿梭千年)을 촬영하고 있으나, 하차 가능성도 염두하고 있다.
배우 지창욱이 출연하는 후난위성TV 선풍소녀2는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다. 소속사 글로리어스 엔터테인먼트 측은 “분량 축소나 편집 등에 대해 전달받은 사항은 없다. 드라마도 현지에서 방송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엔터업계에서 광전총국의 비공식 지침에서 가장 예의주시하고 있는 부분은 한국배우들의 예능과 드라마 출연 금지, 해외 방송물 계약 금지 등이다.
중국 시장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한창 K-팝스타들이 중국에서 인기를 모으다 드라마의 인기로 배우 파워가 높아졌다. 중국의 입장에서 저렴한 개런티에 비해 효과가 높아 한국 배우들의 출연이 많았다”라며 “너나없이 앞다퉈 진출한 상황에서 현재 드라마나 예능에 출연 예정이던 한국 국적의 스타를 돌려보내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각 위성방송사마다 사정이 다르다. 소위 중국 4대 위성(저장위성, 후난위성, 장수위성, 동방위성)으로 꼽히는 방송사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정부의 지침에 동참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또 “현지에선 최고 대우를 받는 국내 특A급 스타의 경우에도 기계약 건을 제외한 향후 방송 활동이나 광고계약은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현지에선 한국스타들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이 편집되거나 촬영 중인 드라마나 영화에서 하차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중국 고위 관계자가 나오는 행사는 무기한 연기되고, 국내 업계와 진행하던 투자 역시 미뤄지고 있다. 한 관계자는 “현재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분위기”로 “다들 쉬쉬하며 몸을 사리고 있다”며 현지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다.
또 다른 엔터업계 관계자는 중국 쪽을 통해 “현지에선 단기간 유보하겠다는 입장이나, 그 기간이 1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는 예측할 수 없다”며 “한창 한류 콘텐츠가 잘 나가는 상황에서 한순간에 얼어버릴 위기가 닥칠 수도 있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이 “중국 한류는 현재 최대 위기를 맞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드라마 시장의 경우 온라인 플랫폼으로 방송되는 형태로 판권을 수출하고 있어 직접적인 타격은 받지 않았으나, 업계에선 향후를 우려하고 있다. 이미 “진작에 심의를 끝냈어야 할 드라마의 심의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례도 나온다.
한 드라마 업계 관계자는 “현재 한국드라마 제작은 중국 시장이 닫혀버리는 상황이 오면 국내 시장의 절반~3분의 1은 날아간다고 보면 된다”라며 “중국 판권 수출로 인한 수익이 제작비로 고스란히 들어가는 상황에서 시장이 닫히면 수익창구가 차단된다”고 설명했다.
이미 드라마제작사의 경우 지난해부터 막대한 손실을 끌어안고 있던 상황에서 중국의 대형기업들이 ‘차이나머니’를 풀어 각 콘텐츠에 개별 투자한 덕에 숨통이 트였다. 그 창구가 막힐 경우 열악한 제작비로 인한 드라마 콘텐츠의 질 저하는 물론 “아예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는 시장 자체가 안된다”는 입장이다.
물론 비관론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중국의 대형기업들이 앞다퉈 국내 엔터업계에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부은 상황에서 현지에서도 대책 마련을 강구할 것이라는 입장도 나온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회장인 박창식 새누리당 전 의원은 현재의 사태에 대해 “중국 시장에서 규제 압박은 항상 존재했다. 작은 제작사들의 경우 현지 진출이 늘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라며 “장벽을 넘기 어려웠던 시장이 사드 문제와 맞물려 비관론을 키우고 있다. 염려는 하되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정치와 문화 융성 정책을 분리해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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