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탑골공원·인사동 탈출 냉방시설 좋은 패스트푸드점으로 갈곳없는 7080 자화상 분석도

[헤럴드경제]“2000원이면 시원하고 편하게 하루 때울 수 있지.” 한낮 기온이 35℃가 훌쩍 넘어선 지난 25일 오전 7시께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박상래(72) 씨가 종로구의 한 패스트푸드점을 찾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킨다. 늦지 않게 도착했는데도 벌써 3명이 도착해 창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박 씨는 매일 오전 6시 집을 나서 1호선을 타고 이곳 패스트푸드점으로 와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킨다. 그는 전남 구례 출신으로 60년대 서울에 올라와 지인의 건설사에서 발주한 공사장에서 일하며 1남 2녀를 키워냈다. 지난 2011년 암 환자였던 부인과 사별하고 나선 혼자 살고 있는데 아들이 자신을 모시겠다고 해 아들이 사는 대전에 잠시 내려갔었으나 금세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반세기 넘게 산 서울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박 씨는 “경로당에 있으면 늙은이들끼리 있으니깐 기분도 우울하고 재미도 없다”며 “여기(패스트푸드점)는 2000원 주고 커피 한잔 시켜 놓으면 하루종일 앉아있어도 아무도 나가라고도 안한다”며 패스트푸드점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여름철 무더운 야외를 피해 종로구 일대 카페ㆍ패스트푸드점을 찾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기존의 많은 노인들이 찾아 인산인해를 이루던 탑골공원이나 인사동 일대는 이제 무더운 날씨로 인해 한산해졌다. 대신 근처 패스트푸드점 창가 자리를 노인들이 채우고 있다.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냉방시설과 저렴한 음료 가격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근무하는 김모(24ㆍ여) 씨도 “여름철이 되면서 가게를 찾는 할아버지들이 특히 더 늘어났다”며 “할머니들보다 할아버지들이 더 많이 오시고 햄버거 같은 식사류 보다는 커피나 아이스크림 같은 디저트류를 많이 찾으신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비해 마땅한 피서 시설이나 활동 프로그램은 부족한 현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염지혜 중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특히 남성 노인들은 은퇴하기 전 여가생활을 즐기는 생활보다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바빴다”며 “사회적 교감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여성 노인들과는 달리 급속히 줄어든 인적 네트워크와 부족한 경제력으로 남성 노인들이 마땅한 취미생활을 향유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구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