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춘병ㆍ조민선 기자]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4.11총선에 이어 초접전이 예상됐던 이번 대선에서도 100만표 안팎의 낙승을 거두며 ‘선거의 여왕’임을 재입증했다. 박 당선인이 이처럼 ‘선거 불패’의 진기록을 이어갈 수 있었던 데는 ‘박근혜 리더십’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정치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박 당선인의 리더십이 빛을 발한 데는 무엇보다 그의 정치철학을 대변하는 ‘원칙과 신뢰’가 큰 힘이 됐다.

원칙과 신뢰는 박 당선인이 지난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정치권에 입문한 후 수없이 강조해 온 정치적 트레이드 마크이다.

2004∼2006년 한나라당 대표, 그리고 2011∼2012 비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과정에서 시스템이나 기준에 따라 당을 운영하고 이러한 기조를 유지한 것에서 원칙과 신뢰의 이미지가 싹텃다는 평가다.

특히 세종시 수정안 반대 등에서 보여준 박 당선인의 정치철학(‘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과 행보는 표를 의식해 유권자들에게 공약을 해놓고도 선거가 끝나면 나몰라라 했던 구태정치 행태와 대조를 이루면서 ‘새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당선인은 지난 7월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할 때에도 “그동안 정치를 해오면서 손해가 되더라도 한번 드린 약속은 반드시 지켜왔다”며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에는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싸워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박 당선인의 리더십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대통합’ 정신이라는 말이 나온다.

세대ㆍ지역ㆍ이념별로 극명하게 갈린 이번 대선에서 박 당선인은 지역, 이념, 계층, 세대간 갈등을 해소하고 모든 국민이 화합ㆍ통합해야만 발전적인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고 수차례 강조했었다.

실제로 박 당선인은 대선후보 확정이후 김해 봉하마을 묘역 참배, 5ㆍ16쿠데타, 유신,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및 유족 공식 사과 등 큰 틀에서 대통합 행보를 이어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선공약에서도 대통합의 정신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합의 핵심인 지연ㆍ학연을 초월하는 대탕평 인사와 지역균형발전을 약속하고 보수정당 입장에선 다소 전향적으로 평가받는 경제민주화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박 당선인과 오랫동안 정치 행보를 같이해 온 인사들은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고 그 사람에 대해선 무한 신뢰를 보내는” 그의 용인술이 박근혜 리더십의 또 다른 강점이라고 평가한다.

박 당선인이 정치에 입문한 1998년부터 지금까지 보좌진을 교체하지 않은 게 대표적 사례다. 이재만 보좌관, 안봉근ㆍ정호성 비서관과 이번 대선 때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이춘상 보좌관이 그들이다. 또 ‘막후 영향력 행사설(說)’ 등 잡음에도 비서실장을 지낸 최경환 의원에 절대적 신임을 보내고, 이정현 공보단장에게 2007년부터 줄곧 ‘대변인격’이라는 ‘중책’을 맡긴 점도 이런 원칙과 무관치 않다.

박 당선인은 대선국면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혈연ㆍ학연ㆍ지연에 얽매이지 않는 ‘능력 위주의 용인술’도 보여줬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세종시 문제로 갈등을 빚다 ‘탈박’한 김무성 전 의원을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에 앉히고, 역시 친박에서 이탈한 진 영 정책위의장을재신임한 점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이는 한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고 ‘분산형’으로 인재를 배치하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과거 퍼스트레이디 대행으로서 누구보다 권력의 속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2인자’를 두지 않으면서도 일단 일을 맡기면 철저하게 역할을 분담, 재량과 책임을 동시에 준다는 것이다.

박 당선인의 이같은 리더십은 그러나 어려운 국면에서 강력한 돌파력의 뒷심이 됐지만 동시에 정치적 유연성이나 주변과의 소통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여권 일각에서는 “어려운 대선을 이겨낸 배경에는 박 당선인의 리더십이 크게 작용했다” 면서도 “다만 그간 단점으로 거론돼 온 내부소통 및 대화 부족 등은 앞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 이라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