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협동조합, 출판사 부도나자 20년 전 보증 섰던 직원에게 “빚 갚아라”

서부지법 “보증인이라도 채무 지급 책임은 재직기간으로 한정해야”

채무 발생 시점 따라 연대보증인 책임 다르게 규정한 최초 판결

[헤럴드경제= 박수진 기자] 회사가 거래처와 계약을 맺을 때 직원을 연대보증인으로 세웠다면 보증 책임은 재직기간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회사의 부도로 거래처가 물품 대금을 받지 못할 경우 보증을 선 직원도 채무를 갚아야 할 책임이 있지만 퇴사를 했다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A(63)씨는 지난 1989년 5월부터 2년 간 B출판사 이사로 재직했다. A 씨는 B출판사가 1989년 한국출판협동조합(조합)과 도서 공급 계약(간이특약서점거래약정)을 맺는 과정에서 회사의 요구로 물품대금지급채무 연대보증을 섰다.

A 씨는 1991년 5월께 회사를 퇴사했다. 이후 20여년이 지난 3월20일께 B출판사는 부도를 맞았다. 부도 당시 출판사가 조합에 지급하지 못한 물품대금은 4800여만원에 달했다.

조합은 B출판사와, 계약 당시 연대보증인인 A 씨에게 밀린 도서대금을 반환하라며 소를 제기했다. 비록 퇴직을 했으나 계약 당시 연대보증인인만큼 회사와 함께 물품대금채무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보증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거래할 때마다 상대방이 거래 당시의 회사에 재직하고 있던 이사 등의 연대보증을 새로이 받는 것이 원칙’이지만 B 출판사는 A 씨가 퇴사한 이후 해당 계약의 연대보증인을 갱신하지 않았다.

서울 서부지방법원 민사9단독 권창영 판사는 출판조합이 A 씨와 B출판사에게 청구한 도서대금청구소송에서 “재직기간 중 채무가 발생하지 않는 한 보증기간은 재직 기간으로 한정해야한다”며 A 씨에 대한 조합 측의 청구를 기각하고 출판사의 지급 책임만 인정한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판결은 채무 발생 시점에 따라 연대 보증인의 책임 정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규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채무 발생 시점이 퇴직 이후라면 계약 당시 연대보증인이었다해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본 셈이다.

권 판사는 “해당 사건의 물품대금채무는 피고가 회사를 퇴사한 후 20여년이 지난 후 발생한 것으로 재직기간 중에는 회사에게 책임을 지울 채무가 없었다”며 “퇴직으로 이사의 지위를 상실한 후 발생한 채무에 대해 계속 보증인의 지위를 무한정 유지하게 하는 것은 사회통념 상 부당하다”고 밝혔다.

권 판사는 “이 사건 연대보증약정은 A 씨의 재직기간 동안에만 유효하다고 할 것이고, 물품대금채권은 A 씨가 퇴사한 지 20년 이상 경과된 후에 발생한 것으로 피고에 대한 청구는 이유가 없다”고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