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백웅기 기자] “디자인 조직이 회사에서 섬이 되게 해선 안됩니다.”
금융회사가 디자인을 거론하는 게 어색할 법 하다. 하지만 현대카드가 지금의 위치에 서기까지 디자인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실을 부정할 이도 없다. 회사 전체에 영감을 불어넣는 중책을 맡아온 오준식 현대카드 디자인실장은 “디자인실이 조직원 전체와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현대카드는 어느덧 신용카드 회사 이상의 회사가 됐다. 오 실장은 “디자인이 지금을 만들었다는 환상은 없다”며 “단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공헌하고 동반자 역할을 충실히 해왔을 뿐”이라고 회사내 디자인실의 위상을 설명했다. 오 실장이 말하는 ‘디자인 경영’의 핵심은 조직 전체가 회사의 정체성, 브랜드 가치, 돈 버는 디자인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그 고민의 결과를 잘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현대카드가 개발한 고유의 서체다. 이제는 CF에서 굳이 회사 이름을 앞세우지 않아도 서체만 보고 현대카드의 광고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오 실장은 “서체를 개발하는 기업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정작 회사의 정체성을 잘 담은 예는 많지 않다”며 “현대카드 서체엔 카드 상품의 설명을 요점만 두괄식으로 명료하게 한다는 곧게 떨어지는 느낌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글씨가 사람의 인격을 드러낸다고 일컫는 이유와 같다.
그렇다고 현대카드의 디자인이 ‘튀는’ 것만은 아니다. 튀지 않는 디자인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다만 깊이있는 디자인을 궁리한다고 했다. 오 실장은 “현대카드 디자인실 직원들은 전공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어느 분야의 전공자든 디자인실에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하고, 그가 또 사내 다른 조직에서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밝혔다. 디자인실이 ‘섬’이 돼선 안된다고 강조한 속뜻이다.
화폐의 역사에 있어서 17세기 지폐의 발명은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이후 1950년 신용카드가 처음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중요했던 작업은 신용카드 사업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는가였다. 최초 신용카드업을 해온 아멕스 등의 회사가 화폐의 개념으로 접근했다.
오 실장은 “부가적으로 신용카드가 가진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화폐라는 의미는 생각의 범위를 새롭게 넓힐 필요가 생긴 것을 뜻했다”고 말했다. 현대카드 디자인의 지향점이 파생된 것이다. 카드업계 후발주자로서 현대카드의 선택은 사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에 디자이너들은 소비자들이 카드를 쓸 때 돈을 쓰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동시에 본인만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디테일한 요소들이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했다.
현대카드만의 이미지가 구축되다보니 생각지 않은 분야로 업역을 확대하는 일도 생겼다. 현대카드가 주최하는 공연에서 제공하는 생수병이 “현대카드스럽지 않다”는 소비자들의 지적을 반영해 생수병까지 디자인하게 된 것이다. 오 실장은 “물을 생산해 운송하고, 심지어 수입까지 한다면 얼마나 많이 석유를 소비하고 자연을 훼손하는 것인가”라며 “물병을 버리고 가던 관람객들도 우리가 디자인한 물병은 여러병씩 챙겨가곤 했다”고 어깨를 으쓱였다. 디자인의 새로운 사회적 공헌 실천방식이었다.
여기에 더해 현대카드는 또다른 디자인 재능기부를 꾀하고 있다. 회사가 추진중인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에 비지니스컨설팅을 더해주는 사업이다. 오 실장은 “999만원 소액 대출에 더해 비지니스 정체성을 더해주는 컨설팅을 통해 영세사업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보통의 회사가 수익이 난 이후에 디자인을 꾀한다면 선제적으로 비지니스를 디자인하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던져줬다”고 다시 새로운 길을 제시하면서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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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안훈기자 rosedal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