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서상범 기자] 일제의 한반도 지배가 한창이던 1944년 12월, 당시 75세 노인이었던 김병현 씨는 동상에 걸린 아들 대신 개성으로 강제징용 됐다. 김 씨는 징용 8개월만인 1945년 7월22일, 광복을 한 달 남겨두고 공습으로 사망했다. 고향인 전남 곡성과는 수백 km 떨어진 개성이 그의 마지막 장소였다.

일제의 강제 징용은 나이 어린 소녀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경북 상주 출신의 10살 소녀 김순낭은 부산의 한 방적공장에서 쉴새 없이 전쟁물자를 만들다 병사(病死)하고 말았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대일항쟁기 위원회)는 국내 강제동원 피해결정자 2만3514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징용 사망자 901명의 사망실태 결과를 29일 공개했다.

이명수 선진통일당 의원의 요청으로 대일항쟁기 위원회가 공개한 이번자료에 따르면 사망자의 17.8%인 161명이 18세 이하의 미성년자였고 14세 이하 아동도 3.4%인 35명에 달했다.

60대 이상의 노인도 9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자들은 주로 토목건축공사장과 탄광산에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자의 93%가 충청 이하 한반도 남부 지역 출신이었고 사망자 65%는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사망했다.

위원회는 사망자의 32.97%인 297명이 유해를 수습하지 못했고, 특히 202명은 출신지역과 거리가 멀어 유해 수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유해수습 및 유가족의 묘소 참배 등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1947년 일본 대장성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군수물자 생산과 인프라 건설을 위해 동원한 한국인 인원은 총 648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강제동원 피해자다.

이들은 한반도 각지 7천여개가 넘는 광산과 탄광, 군수공장, 발전소공사장 등지에서 강제노동을 해야 했고, 미쓰이와 미쓰비시 등 일본 유수의 전범기업들이 이들을 착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할 당시 인원수가 많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내 강제동원대상자를 보상 협의 대상에서 제외했고 현재까지 보상에 관한 논란은 계속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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