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6개월 앞두고 후보 검증 돌입 경총 등 차기정부 과제 보고서 발표, 대선후보군에 전달 포퓰리즘 대선정국 적극적 차단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MB 정부 출범 후 4년4개월. 재계엔 금기어(禁忌語)가 하나 있었다. 바로 ‘대선(大選)’이다. 차기 정부나 차기 대통령 후보에 대해선 철저히 침묵했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거울에 비치는 것에 오해와 함께 곧바로 역풍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원거리에서 낮은 포복으로 임해 온 것이다. 재계로선 대선은 4년4개월 동안 ‘판도라의 상자’를 의미했다.
그런 재계가 마침내 침묵을 깨고 ‘금기어’라는 새장 속에서 탈출했다. ‘대선 검증 모드’에 돌입한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은 재계를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재계 단체다.
경총은 이르면 이달, 늦으면 다음달 중 백서 형태의 ‘차기 정부 정책 건의서’를 내놓는다. 노동 복지 성장 정책 등에 관한 경영계의 요구를 담은 것이다. 경총은 이 건의서를 모든 잠정 대선 후보군 측에 전달키로 했다.
전경련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은 ‘차기정부 정책 과제’ 보고서를 현재 준비 중이다. 외부 발주와 내부 연구팀을 동원한 이 프로젝트는 50%이상 진행됐다. 거시금융 복지 재정 기업제도 통일안보 등 8개 카테고리에 60개 분야를 담은 이 보고서는 10월 이후 백서 형태로 나온다. 이 보고서는 지난 4월 총선 공약 검증을 포함하고 있어 대선후보에 대한 공약 검증 효과를 지닌다. 한경연은 최근 김문수 경기지사에 이어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등 대선 후보군에 대한 초청 세미나를 추진, 사실상 후보 검증 모드에 돌입했다는 평가다.
대한상의도 외부 용역이나 내부 발제를 끝내고 대선후보가 결정되는 시점에 적극적인 공약 검토에 들어가기로 했다.
재계단체가 이처럼 대통령선거를 6개월 앞두고 대선모드에 들어간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대기업의 경영환경과 관련이 크다. 스페인마저 구제금융 절차에 들어가는 유럽발 금융위기와 미국경기의 흔들림과 중국 성장세 둔화 등 기업이 사상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데도 국내에선 포퓰리즘의 거센 공세만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재계단체 관계자는 “기업들이 열이면 열 생존기로에 놓여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며 “단체가 계획하는 보고서는 차기정부 과제에 초점을 뒀지만, 대선 정국에서의 잘못된 정책, 거친 포퓰리즘을 거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대선 후보에 대한 검증과 다름이 아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기업들로부터 그동안 ‘재계단체는 뭐 하느냐’는 비판을 받은 게 사실”이라며 “더 이상 숨죽이고 있을 수 없어 차기정부 정책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기 위해 단체가 나선 것이고, 이는 포퓰리즘 정국에 적극적인 방어막을 형성하겠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이 재계단체의 대선정국 정책 보고서는 대기업의 물밑 지원 속에 진행되고 있다. 전경련 등 재계단체는 각 당에서 대선주자가 정해지고, 캠프가 공약을 발표하면 곧바로 철저한 검증을 목표로 한 세미나 개최나 추가 보고서 발표, 나아가 재계단체 공동명의의 건의문을 준비키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되는 것은 대기업들이 대선모드와 관련해 재계단체 등만 떠민채 방관만 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일부 대기업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경선 시나리오 등에 주목하면서 특정 후보군의 예상되는 정책 방향과 그 대응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 중이라는 말도 나돈다.
대기업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상 최대의 경영위기 속에서 5년간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 대선정국 중심권으로 진입한 것은 명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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