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기업인, 국제기관단체인)
이건희(기업인, 국제기관단체인)

절제→충격→암시화법 변화 위기속‘ 그룹 안정’도모 행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독서광이다. 한 달에 읽는 책이 20여권에 달한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말이 짧다. 대신 촌철살인이다.

이 회장 역시 그렇다. 경영 현안에 대해 허투루 답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이 회장이 내놓는 경영 화두는 단문이면서도 임팩트가 강하다.

이런 이 회장의 발언 폭이 최근 한층 넓어진 것은 주목된다. 임팩트에 유머를 가미했다. 지난 19일 여성 승진자들과의 오찬에서 그는 여직원들에게 “가정일과 회사일을 하다니, 대단하다. 남자들에게 시키면 못할 것이고 나부터 도망갈 것”이라고 해 좌중의 배꼽을 잡게 했다. 이 회장이 유머를 섞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면 ‘왜 출근하셨는가”라는 질문에 “그냥 할 일이 없어서…”라고 하는 등 가끔 농담도 한다.

하지만 삼성의 과거 관행경영이 세간에 오르내리고 형제간 소송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그의 유머는 행간이 남달라 보인다. 오너로서의 ‘안정감’을 심어주기 위한 행보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주목할 것은 이 회장의 멘트가 진화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삼성이 잘나가면서 그는 절제화법을 주로 썼다. 2003년 말 위기의 휴대폰 사업이 정상화됐을 당시 이기태 사장에게 한 칭찬은 “겨우 졸업했군”이라는 말이었다.

이후 이 회장은 충격화법도 간간이 선보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포할 때 “5년, 10년 후를 생각하면 등에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애니콜은 일류지만 삼성 디자인은 1.5류”라며 디자인 강화를 채근하기도 했다.

이 회장이 경영 복귀를 한 후 2년 이상 그는 위기론ㆍ긴장론ㆍ젊은 인재론 등 숱한 경영 코드를 쏟아내면서도 밑바탕엔 암시의 메시지를 주로 깔았다.

백미는 애플과의 소송과 관련한 발언이다. 그는 애플과의 격한 전쟁을 예고하면서 “(애플이 소송을 거는 이유는) 못이 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고 했다. 망치로 때림을 당하는 못이 절대 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에서 나온 비유다.

이같이 이 회장의 발언은 ‘절제→충격→암시→유머 화법’으로 자연스럽게 전개되며 업계에 감성경영과 공격경영의 메시지로 확산돼 왔다.

물론 이 회장이 현재 유머 화법에만 전력을 기울이는 것은 아니다. 형제간 소송과 관련해서 “한푼도 줄 수 없다”는 초강경 발언을 함으로써 ‘이건희 회장답지 않은, 센 발언’이라는 평가와 함께 삼성가 내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시각이 뒤따랐던 게 사실이다.

김영상 기자/ysk@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