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말기환자 삶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 안내서
의미있는 마지막 순간위해
우리가 가야 할 방향 제시
“평소에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셨나요.”“아니요 신부님, 난 한번도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죽음이란 나하고 상관없는 것이니까요.”
소설가 최인호의 단편 ‘이별없는 이별’에서 신앙심이 깊은 큰 누나는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분명하고 단호한 모습을 보인다.
생각하기조차 두려운 죽음 앞에서 이런 태도를 갖기는 쉽지 않다. 죽음의 문턱에 다가선 이들이 아니라도 누구나 한번쯤 죽음을 내 일로 여기게 되는 때가 있다. 죽음을 좀 더 편하게 대하고 품위를 지키며 죽음을 맞을 순 없을까. 웰 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알려주는 지침 같은 건 찾아보기 쉽지 않다.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이란 책으로 잘 알려진 세계 최고의 호스피스 전문의 아이라 바이오크는 이번엔 ‘품위 있는 죽음의 조건’(물푸레)을 통해 죽음을 실제적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들려준다. 길면 몇 년 짧으면 몇 주간의 죽음의 진행 속에서 당사자와 가족들이 어떻게 마지막을 의미 있게 지켜내야 하는지 다양한 경로를 보여주며 독자들로 하여금 디테일에 주목하도록 유도한다.
저자가 전작에서는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한 조건으로 ‘마지막 말’,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이 책에선 저마다 다른 죽음의 환경을 통해 웰 다잉의 총체적 모습을 제시한다. 다양한 모습을 통해 비단 죽음에 처한 이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친지, 주변인들에게도 죽음이 당혹스럽고 고통스런 일이 아닌 견딜 만한, 때론 선물 같은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으로 이끈다. 그렇다면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과정에서 특히 잘해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저자가 인생의 마지막 임무라 부르는 것은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만약에 내가 오늘 죽는다면 어떤 일을 미완성으로 남기게 되는가?”“어떻게 하면 남아있는 시간 동안 최대한 충실하게 살아갈 것인가?”다. 이를 통해 마지막 임무와 이정표를 찾을 수 있다.
책은 30여년간 수천여명의 말기 환자들이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왔던 저자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췌장암에 걸린 아버지와 마지막 몇 달을 함께한 얘기는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하나의 팁이다. 죽음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유머를 잃지 않고 각 가족구성원들이 이전보다 더 친밀함과 솔직함, 숨김없는 사랑을 서로 나누며 가족의 의미를 공유하는 선택된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따뜻하게 보여준다.
50대 앤느마리 윌슨의 사례는 죽음이라는 사태를 의학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양상에 집중할 때 그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달리 말하면 의료 과학적 사건으로만 보는 것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대장암에 걸린 앤느마리는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다 틀어진 동생 캐시의 집으로 옮기게 된다. 캐시는 지난 날의 과오를 바로잡고 싶어했기 때문에 간병은 부담이 아니라 하나의 축복으로 여긴다. 남편 프랭크의 죽음으로 서먹해진 딸 신디의 결혼식은 앤느마리에겐 엄마로서의 역할을 완수하는 기회이자 친척들과 친구들과의 마지막 만남이다. 품위 있고 깔끔한, 죽음의 냄새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향수로 치장하고 죽고 싶은 앤느마리의 마지막은 그런 바람과 달리 소변으로 시트와 온몸이 젖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목욕보조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스피스 간호사 앤디와 동생 캐시, 딸 신디는 함께 앤느마리의 몸을 씻기고 치장해 주며 서로 보듬으며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마흔여섯 살의 나이로 폐암에 걸린 세 자녀의 아버지였던 더글라스 커니의 얘기는 고통의 문제를 짚어보게 한다. 더글라스가 경험한 특유의 괴로움은 신체적인 통증보다 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이었다. 그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슬픔의 깊이를 부정함으로써 가족으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키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는 세상에 분개해고 그 맹목적 분노는 가까운 이들에 대한 폭력으로 변질되면서 가족과의 관계마저 위태롭게 만든다.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해야 했던 그는 결국 자신의 고통을 끌어안음으로써 마침내 고통을 벗어나 가족과 화해하기에 이른다.
저자가 다양한 죽음들 속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말은 “품위 있는 죽음은 결코 우연이나 요행의 산물이 아니라 그 본질을 이해하고 애써 추구할 때만 얻을 수 있는 결과라는 것”이다. 저자가 따로 강조하지 않지만 성공적인 죽음에 호스피스 전문의나 간호사의 역할이 삼박자의 하나를 이룬다는 사실 역시 지나칠 수 없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