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죽음의 계곡 (21)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얼큰하고 맛있게 잘 끓여놓은 버섯찌개에 어쩌다가 독버섯이 한 톨이라도 들어가게 되면 그 찌개는 도루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이 세상 어느 요리사라도 독버섯을 일부러 찌개에 넣을 리는 없지만 구분을 할 수 없을 경우엔 문제가 된다. 식용버섯 군락지에 겉으로 보아서는 전혀 구별할 수 없는 독버섯이 끼어서 자라난다는 게 문제라는 말이다.

신희영은 먹음직한 버섯찌개를 끓이기 위해 정성스럽게 식재료를 다듬는 중이었다. 그 식재료는 우리가 알다시피 강유리라는 천재골퍼와 매니저 백광돌, 스포츠마케팅 팀장 강준호, 전략기획실장 한승우 등이었다. 이제 계란만 구해오면 톡! 깨뜨려서 노른자를 뽑아 넣으면 훌륭한 버섯찌개가 될 판이었다.

‘아, 이건 뭐지? 신나는 내용인 걸?’

지난 봄,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학입시에 실패한 유민 회장의 딸 유한솜은 재수생을 위한 학원수업을 빼먹은 채 소설책 읽기에 빠져있었다. 재수생활이 이토록 심란하고 짜증스러운 것인 줄 이제야 깨달았으니 소설 속에나 파묻힐 수밖에.

아침에 눈을 뜨면 아버지 유민 회장과 어머니 신희영은 이미 회사에 출근한 뒤라서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재벌회사라더니 출근시간이 어찌 그리도 이른지, 새벽 6시만 되면 그들을 태우기 위해 승용차 두 대가 늘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고3 시절만 해도 가정교사였던 한승우와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지만, 이젠 그 마저도 유민 제련그룹에 취직하여 훌쩍 떠나버린 뒤끝이라 집안은 공허하기만 했다. 간혹 집안일을 도맡은 송 집사의 잔기침 소리만 들려올 뿐. ‘결혼의 굴레는 너무 무겁기 때문에 그것을 지탱하는 데에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고? 뭐야? 세 사람인 경우도 있어?’

그녀는 소설책 속표지에 쓰여 있는 글귀를 보며 한동안 골몰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다음 장을 펼쳐보니 이건 또 뭔 소린지…

‘중혼(重婚)을 하면 남편이 하나 남아돈다. 그러나 일부일처도 마찬가지.’

참으로 묘한 내용들이었다. 결혼의 굴레가 너무 무겁기 때문에 그걸 지탱하기 위해서는 세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이나, 일부일처로 살아도 남편이 하나 남아돈다는 말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녀는 이미 학원을 빼먹기로 작정했으므로 시간에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게으름을 피우며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고, 역시 느린 동작으로 샤워기를 틀어 물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샤워를 하는 내내 좀 전에 읽은 글귀가 머릿속을 맴도는 걸 무슨 까닭일까.

“대학에 가기 전엔 절대 안 돼.”

이상한 일이었다. 샤워기의 물줄기를 몸에 받는 순간이면 언제나 그가 해준 대답이 떠오르곤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대학축제인 신춘예술제를 구경하면서 한승우의 팔에 매달렸을 때 그로부터 억지로 들은 대답이었다. 물론 “우린 언제쯤 같이 잘 수 있어요?” 하고 그녀가 당돌하게 먼저 물어본 뒤끝이었지만.

대학에 가기 전에는 절대 같이 잘 수 없다는 말은, 곧 대학생이 되면 함께 섹스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유한솜은 재수생이므로 아직 대학생의 반열에 들지 못한 저지였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했으니 이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신희영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본다면, 어느새 유한솜은 눈길을 끄는 독버섯으로 자라났다는 뜻이 된다. 그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그랬듯이 노총각 한승우를 여전히 흠모하고 있었다. 한승우라면 이미 신희영이 침을 발라놓고 공들이는 버섯찌개의 재료 아니던가. 그 남자를 유한솜이 노리고 있으니 그녀야말로 독버섯임에 분명했다.

쏴아! 샤워기를 틀자 그녀의 봉긋한 젖가슴 위로 물살이 부서져 내렸다. 그 거센 물줄기가 핑크빛 녹두알에 닿을 때마다 야릇한 전율에 몸이 움찔거려지는 건 어째서 인지… 탈의(脫衣)는 사랑의 완성, 미스터 굿 바를 찾으세요! 신춘예술제의 장마당에서 핫도그를 팔던 학생들이 매직잉크로 휘갈겨 써놓았던 그 말의 뜻을 그녀는 이제야 감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젖가슴을 샤워기에 바짝 들이댄 채 거센 물줄기를 맞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