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국내 증시 변동성 커져
“향후 정치적 여진발 불안감에 투심 악화 우려”
“과거 정치적 사건 때마다 증시 하락세 커”
“광우병 사태·최순실 게이트 때 외인 이탈 뚜렷”
[헤럴드경제=유혜림·심아란·김민지 기자] 한국 증권·금융시장이 ‘계엄령 패닉(공황)’에 휩싸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6시간 만에 이를 해제했지만, 여의도 증권가에선 향후 정치적 파장에 시장 불안감이 커지면서 ‘코리아 엑소더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증시 전문가들은 “올해는 달러 강세와 국채 금리 상승으로 불안감이 커진 국면”이라며 “여기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세로 단기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단기 변동성 확대 불가피”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건 향후 정치적 파장이 키울 증시 변동성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비상 계엄을 선포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2년여 만에 최고 수준까지 치솟고, 주가와 가상자산 가격이 급락했다. 이후 국회에서 4일 새벽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시장 불안감은 일시적으로나마 진정된 상태라는 평가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비상 계엄 선포가 해제되는 과정에서 환율, 야간 선물 시장 등 낙폭이 줄어 금융시장 충격 강도는 제한적일 전망”이라며 “다만, 이번 사태 이후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 증시와 환율 시장이 극심한 저평가 영역에 위치한 만큼 점차 안정을 찾아갈 가능성도 높다”고 판단했다.
기관투자자들도 일단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국내 한 연기금 CIO는 “비상계엄 이슈가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라며 “당장 국내 주식과 채권 투자 비중을 조정하기보다는 원·달러 환율 추이를 지켜보면서 시장 지수를 하회하지 않도록 포트폴리오를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소용돌이가 불러올 여진”
증권가에선 계엄 해제에도 불구하고 정국이 불안정해지면서 외국인의 투자심리가 약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향후 대통령 탄핵 요구가 거세지는 등 정치적 파장이 일 때마다 이탈세가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시황 연구원은 “이번 계엄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앞으로 주목해야 할 건 정치발(發) 여진”이라며 “과거 이명박 광우병 사태,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정치 불안감이 고조될 때마다 외국인 이탈로 국내 증시가 흔들렸다”고 지적했다.
하나증권 리서치센터가 과거 한국 주요 정치 이벤트 발발 기간 금융동향을 분석한 자료를 살펴보면, ‘이명박 광우병 사태(지난 2008년 4월 18일~6월 26일)’ 당시 코스피 지수는 2.9% 내렸다. 이 기간 외국인은 3조1610억원을 순매도했다. ‘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촉발된 단기간(2016년 10월 19일~24일)에도 코스피 지수는 3.4% 하락했으며 외국인은 9820억원어치 팔아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우려와 달리 단기 악재에 그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 연기금 CIO는 “우선 비상계엄은 해프닝으로 끝난 만큼 이번 사태가 제대로 수습된다면 오히려 정치적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라며 “단기적으로 시장이 흔들려도 큰 영향은 없을 거고 기업 경영 실적 등이 훨씬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韓 국가 신인도 우려도”
글로벌 시장에서의 국가 신인도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은 “올해 한국 증시가 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하락하고 OECD 국가 중에서도 수익률이 낮은 상황인데도, 기업 거버넌스 후퇴에 외국인들이 저가 매수하지 않고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향후 7~8일 동안 국내 정치 정국을 살피면서 상당히 보수적으로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채권시장 동향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주식시장은 불확실성이 확대된 만큼 하락이 불가피한데, 채권시장은 변동성 지속 기간을 결정할 요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한국 증시는 계엄령 발표와 해제 등 정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라면서 “한국 채권시장은 대외 신인도와 관련 있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국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이 안정을 보였고, 원화와 해외 ADR(주식예탁증서) 등이 변동성 확대 후 일부 안정을 보였다는 점은 우호적”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거래소는 4일 국내 증시를 정상적으로 개장했다. 이와 관련, 한 증권사 임원은 “정치적 이슈로 외국인 등 투자자들의 시장 접근성을 막으면 오히려 시장 공포만 더 증폭시킬 수 있다”면서 “장 초반 변동성은 크겠지만 개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