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비상계엄 조치…“‘서울의 봄’이 눈앞에”
자조 섞인 평행이론·패러디 포스터·밈 등 유행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너희가 지금 서울로 진입하면 그 즉시 전쟁이야.”
1979년 12월 12일, 일촉즉발의 9시간을 재구성한 영화 ‘서울의 봄’(2023). 작년 이맘 때 입소문을 타고 순항한 영화를 1년여 만에 재개봉하라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오고 있다. 13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해 불과 닷새 전 열린 청룡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이 영화가 지난 밤 사이 오늘날 작금의 현실을 빗대고 있어서다.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였다”는 게시글은 좋아요 8000여개를 받았다.
4일 오후 1시반 기준 소셜미디어 ‘X’(엑스·옛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따르면 ‘서울의 봄’ 관련 게시물이 49만개를 넘으며 16위를 차지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을 앞둔 지난 3일 본회의장 앞에서 “영화 ‘서울의 봄’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며 “현재 의원 숫자가 모자란다. 의원분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담을 넘어서라도 들어와 달라”고 했다.
영화는 전두환 세력의 12·12 쿠데타 전 사정과 그날 밤의 기억을 다룬다. 권력에 눈먼 인간들의 검은 욕망이 서울 시내를 휘감은 9시간이 긴박하게 전개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김성수 감독은 “영화가 가진 의미는 ‘이런 일은 늘 벌어진다’는 현재성”이라며 “우리가 모르는 사이 언제든 어떤 커다란 일이 벌어질 수 있고, 그것이 역사책에 나오는 멋진 사람들의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두환의 성공한 쿠데타와 달리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6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전날 오후 10시 30분께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4일 오전 1시께 국회는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다. 그 후 오전 4시 30분께 윤 대통령이 “국회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담화를 내놓으면서 비상계엄은 해제됐다.
영화와 현실의 계엄 사태를 비교하며 패러디한 밈들도 쏟아지고 있다. ‘서울의 봄’ 속 주인공 전두광을 윤 대통령 얼굴로 바꿔놓은 포스터부터 시작해 영화 평론에 개연성을 따져선 안 된다는 조롱 어린 해설 등이 나온다.
아시아 여성 최초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해에 벌어진 44년 만의 계엄령 선포가 “더 영화적”이라는 놀라움과 조소도 잇따른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오는 10일로 다가온 가운데 작가가 사상 초유의 사태와 관련한 메시지를 내놓을지도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