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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공공기관의 소프트웨어(SW) 사업 직접 참여, 관련 산업 생태계 망친다
[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불교에서는 ‘인과율(因果律)’을 강조한다. 선한 의도는 선한 결과를, 악한 의도는 악한 결과를 부른다는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법칙이다. 인간의 올바른 삶을 규정짓는 종교적ㆍ도덕적 잣대로서 이 법칙에는 그릇됨이 없다.

그러나 이 법칙이 개인의 삶을 벗어나 다양한 주체가 영향을 주고받는 경제ㆍ산업의 영역으로 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의 활동 범위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현대 산업 구조 속에서, 종종 정부의 선한 의도는 시장에 나쁜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정부가 대대적인 자금투자를 거듭해온 ITㆍ소프트웨어(SW) 산업이 대표적인 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정부는 IT 인프라와 구축을 위해 지난 2009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평균 3조3000억원 이상을 IT 산업에 투자해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인터넷 보급률은 76%(2012년 기준)로 급격히 증가했고, 정부의 전자문서 유통 비중과 온라인 민원신청 비중도 각각 97.4%, 82%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동시에 SW 산업계는 심각한 타격을 피할 수 없었다. 공공기관이 대량의 예산을 투입해 직접 개발한 무상 SW의 범람 앞에서, 중소 SW 업체는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채 문을 닫아야 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조사 결과 지난 2008년 안전행정부가 전자결재ㆍ문서시스템인 ‘온나라 시스템’을 개발해 무상배포 하면서 민간 전자문서시스템을 이용하던 289개 공공기관 중 105곳이 온나라 시스템을 선택했다.

이에 따라 관련 사업을 하던 중소 SW 업체 핸디소프트는 2009년 창업자 퇴출을 당한 데 이어 2011년 상장폐지까지 되는 아픔을 겪었다.

국토교통부의 공간정보플랫폼 ‘VWorld’와 중소기업의 ‘ERP(전사적 자원관리) 구축 사업’ 역시 정부의 예산 규모에 따라 관련 시장을 출렁이게 하고 있다. 이른바 ‘선인악과’(善因惡果)의 발현이다.

정부의 선한 의도를 선한 결과로 이어지게 하려면 방법을 바꿔야 한다. 공공기관이 직접 SW의 저작권을 소유한 채 무상배포를 주도하기보다는, SW 개발자의 재산권을 인정해 개발 의욕을 높이고 SW 가격 현실화를 통해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진정한 선인선과를 위해서다.

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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