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민시위대가 금남로 일대에서 계엄군과 대치하며 승용차에 불을 질러, 저지선을 펴는 군경 쪽으로 굴려 보내고 있다(1980.5.23)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로 대학에 계엄군이 진주했다. 계엄해제와 휴교령 철폐를 요구하는 전남대 시위대를 계엄군이 진압, 학생들은 금남로 이동 시민들이 시위대에 합류, 무장하며 계엄군과 공방을 벌였다. 5월 27일, 계엄군 2만 5천 명이 투입, 도청안 시민시위대에 무차별 사격하며 시내를 장악, 상황이 종료됐다. 사망 191명, 부상 852명으로 발표됐다. 이 사건으로 한국의 사회운동이 1970년대 지식인 중심 운동에서 민중운동으로 변화됐다. 사건 당시 난동에서 1988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