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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2만원짜리 도서교환권 마구 뿌린 ‘세계 책의 날’
23일 경의선 책거리에서 책을 사라고 나눠준 2만원짜리 도서교환권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4월 23일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그냥 ‘세계 책의 날’이라고 부른다. 그동안 청계광장과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던 기념행사가 올해는 경의선 책거리에서 열렸다.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책 드림’ 행사다. 정부 관계자가 행사에 참여한 이들에게 책과 장미를 선물하는 것이다. ‘세계 책의 날‘은 독서를 장려하고 책의 출판을 독려하기 위해 1995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기념일이다. 이날 장미를 선물하는 건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축제일인 ‘세인트 조지의 날’에서 유래한 걸로 알려져 있다.

예년처럼 이날 행사에도 김용삼 문체부1차관과 김수영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이 참여자들에게 빨간 장미 한 송이와 책 한 권씩을 선물했고, 받은 이들은 기뻐했다.

그런데 얘기는 여기서부터 달라진다.
‘책과 꽃’은 한마디로 ‘쇼’였다. 사진용 행사였다.

행사장은 여느 때보다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 다만 북콘서트장은 썰렁했다. 매년 그렇듯 콘서트가 무색하게 네댓 명 앉아서 무대 위 토크를 듣고 있었다. 그래도 ‘2019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란 글씨가 새겨진 노란 티셔츠를 입고 뛰어다니는 초등학생 그룹들이 많아 활기차 보였다.

출판사 부스에서 책을 사는 이들도 예전보다 많아 보여 다행이다 싶었다. 어린이책을 파는 출판사에게 책 좀 팔리느냐고 물었더니 정자로 표기한 각 책의 판매 부수를 보여줬다. 20여권쯤 판매된 것 같았다. 직원의 얼굴이 밝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예의 노란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의 손에 2만원권 도서교환권이 들려있는 게 보였다. 처음엔 놀이용 딱지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출판사 부스 앞에서 그걸로 책을 사는 게 눈에 띄었다. “이건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더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사진을 좀 찍어도 되느냐”고 다시 물으니, 아이는 얼른 뒤로 감췄다. 또 다른 데서 만난 아이에게 “이런 건 어떻게 해야 받느냐”고 물었더니, 런닝맨을 해서 받았다고 했다. 런닝맨이라니! 점점 의문이 커졌다.

‘책드림’ 행사에서 김용삼 문체부 1차관이 시민들에게 장미와 책을 선물하고 있다.

그런 뒤 또 다른 곳에서 꽃과 도서교환권을 손에 들고 있는 여성을 만났다. 또 물어봤다. “이건 어디서 받느냐”고. 그녀는 사실 주면 안 되는데, 그냥 주더라고 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그녀 역시 거부했다.

그러고 보니 출판사 부스마다 책 구매자들로부터 받은 2만원짜리 도서교환권이 쌓여있었다.

본부를 찾아 자초지종을 들었다. 출판진흥원 관계자는 ‘책드림’ 행사로 도서교환권을 준 거라고 했다. 책드림 행사는 진흥원 사이트와 독서인 사이트를 통해 공지를 했고, 신청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행사 전날인 22일까지 423명이 신청했다. 그러나 2만원권 도서교환권을 준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문제는 423명 중 현장에 와서 책이 아닌 도서교환권이란 걸 받아간 이도 150여명에 불과했다. 남은 도서교환권을 행사장에서 마구 뿌린 것이다.

관계자는 이벤트인 런닝맨과 책빙고를 통해서도 도서교환권을 선물하기 때문에 도서교환권을 더 만들었다고 했다.

책을 주는 것과 2만원짜리 도서교환권을 주는 건 엄연히 다르다. 책을 준다고 하고 도서교환권을 주는 것도 맞지 않다. 책을 주는 걸로 시끌벅적하게 사진 찍고, 뒤로는 도서교환권을 주는 건 더 옳지 않다.

책 읽기가 지식과 정보뿐 아니라 좋은 인격 형성을 위한 거라고 내세우면서 정부가 앞장서서 그런 책의 가치에 먹칠을 한 꼴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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