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지난해로 30주년을 맞은 국내의 대표적인 갤러리인 가나아트(gana art)를 이끌어왔던 이옥경(53) 사장이 미술품경매사 서울옥션의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긴다. 이 사장은 내달 30일 열리는 서울옥션(063170)의 임시주총에서 신임 대표이사 겸 부회장으로 선임될 예정이다. 국내 미술경매사가 여성CEO를 맞는 것은 처음이다. 헤럴드경제가 그를 만나봤다.

“요즘 젊은 직장인과 기업인을 만나면 미술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거죠. 젊은 층들은 미술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잠재고객의 층도 깊고요. 문제는 저같은 아트마켓 종사자들이 기대에 잘 부응하지 못한 거죠. 앞으로 그 물꼬를 트는 작업을 집중적으로 해보겠습니다. 우선은 젊은 애호가를 더 많이 만드는데 촛점을 맞출 겁니다”

국내 화랑가에서 기획력, 마케팅력(영업력), 소통력 등 3박자를 갖춘 갤러리스트로 손꼽히는 이옥경 사장이 서울옥션 대표 내정 이후 밝힌 일성이다. 이 사장은 새로운 고객및 신규 사업영역 창출을 화두로 내걸었다.

이 사장은 국내 미술시장이 너무 침체돼 있는 것을 매우 안타까와 했다. 세계 미술시장이 최근 5,6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구가하며 지난해 약 68조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에 비해, 국내 미술시장은 이런저런 사건이 터지며 계속 뒷걸음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의 미술시장 규모가 연간 4405억원(2012년)에 불과하다는 것은 뼈아픈 대목이라고 했다. 가나아트도 재작년의 경우 적자를 기록했고, 작년에도 매출이 약간 회복되며 수익이 나긴 했지만 예년에 비하면 미흡한 수준임을 절감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직 정식으로 선임된 게 아니라 조심스럽지만 경매는 화랑업에 비해 좀 더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전두환-전재국 컬렉션 경매가 큰 화제를 모으며 100% 낙찰된 게 한 예죠. 대중에게 많은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옥션은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한 게 장점입니다. 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린 거래라는 점에서 신규고객 확보도 유리하다고 봅니다”라고 밝혔다. 게다가 요즘은 고객들이 작품 동향에 대해 더 스터디를 많이 하고, 글로벌 마켓에 대한 정보도 깊고 풍부하게 확보하고 있어 전기만 마련된다면 미술시장이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자료를 훑어봤더니 가나아트가 한 해에 68회의 전시를 진행한 적도 있더라고요. 내부전시 뿐 아니라 외부기획전까지 일 참 많이 했지요. 그렇게 단련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술시장의 대중화, 활성화를 도모할 계획입니다. 기획경매, 중저가 경매, 포럼, 기업과의 공동마케팅, 새로운 예술이벤트 등 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이 사장의 전공은 좀 뜻밖이다. 서울여대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다. 그런 그는 지난 1994년, 가나아트 비서실을 시작으로 미술계에 21년째 몸담고 있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오빠(가나아트및 서울옥션 창업주인 이호재 회장)가 절 부르더라고요. “화랑일을 배워보라”면서요. 저희 집은 모두 9남매인데 오빠는 여섯째, 이동재 아트사이드 갤러리 대표가 여덟째, 저는 막내(아홉째)입니다. 오빠인 이호재 회장이 전속작가제, 조각공원 조성, 해외화랑 설립, 해외 아트페어 참가,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을 벌이는 걸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면서 많은 걸 배웠죠. 오빠를 닮아서인지 저 역시 일 벌이는 체질이고요”

이 사장은 이 회장이 경매사업에 주력하기 위해 2000년 갤러리 경영에서 물러난뒤, 이듬해부터 가나아트 사장을 맡아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서울역앞 옛 대우빌딩 외벽을 세계에서 가장 큰(100x78m) ‘미디어 캔버스’로 만든 겁니다. 빌딩을 사들인 모건 스탠리가 대대적인 건물 리모델링을 하면서 부지 기부체납을 하거나 공원 등을 조성해야 하는데 인근에 여유 땅이 전혀 없어 아트 웍을 하게 됐지요. 이에 초대형 건물의 전면부를 활용한 아트 웍을 시행했습니다. 줄리안 오피 등 국내외 유명작가의 작품을 상영해 이제는 서울의 문화아이콘이 됐지만, 전례가 없어서 무척 힘들었습니다.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일도 쉽지 않았고요. 그래도 결국은 해내서 이제는 서울시의 랜드마크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어 ”현대백화점및 미스터피자와의 아트프로젝트, 디큐브시티에의 작품설치 등도 잊지 못할 이벤트였습니다. 한국도자기 등 여러 기업과 아트 콜라보레이션도 시행했고요. 그런데 아트 비즈니스는 겉으로 보면 화려하고, 멋지지만 이면은 거의 중노동에 가깝지요. 늘 새로운 분야를 뚫다보니 아슬아슬 살얼음을 디딜 때도 많고요. 디자인및 사진부문으로 갤러리의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장흥아트파크및 아틀리에 조성, 딜러체제 본격 도입 등 앞장 서서 시도한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작가들과 헤어지게 된 것은 무척 가슴 아프다고 했다. 가나는 현재 매월 생활비를 지원하는 작가 18명에, 아틀리에 입주작가 60명, 전속작가 50명 등 후원작가가 100여명이 넘는다. 이들과 이 사장과의 관계는 단순한 화랑주-작가 관계를 뛰어넘는 끈끈함이 있다. 미술경기가 호황이어서 결과가 좋았을 때 보다는, 작품판매가 잘 안돼 함께 안타까와하며 술잔을 기울였던 순간이 더 떠오른다는 이 사장은 개성 강한 예술가들과 일하느라 술도 꽤 늘었다고 토로했다.

“앞으로 가나아트는 이호재 회장의 장남인 이정용(37) 상무가 잘 이끌 거라 생각합니다. 가나에 몸담은지 11년째니까요. 서울옥션은 미술품경매 외에도 재미를 추구하는 여러 사업을 펼칠 겁니다. 화랑과의 관계도 서로 윈윈하며, 시장에 탄력이 붙도록 할 거고요. 제가 오랜 기간 화랑을 경영해왔으니 섬세하게 결을 잘 살펴야겠지요.우선은 경매사 설립이래 15년째 3000명선에 머물고 있는 고객을 두배로 확대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도전과 혁신이 필요하겠지요”라고 밝혔다.

한편 이호재 회장은 이옥경 사장의 장점으로 고객들과의 네트워킹에 능한 것을 꼽았다.

이 회장은 ”기업오너 등을 대상으로 한 CEO아트포럼을 10년이상 잘 이끌어오는 걸 보고 놀랬다. 서울옥션을 맡아서도 새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 기대한다. 경매는 치고 나가야 하는게 있어야 하는데 그걸 잘 할 거라 생각한다”며 “7년 전 서울옥션이 홍콩에 사무소를 내며 진출하자, 중국의 폴리옥션은 업무협약을 맺자고 요청해왔다. 그 당시 서울옥션의 연매출은 800억, 폴리옥션은 700억원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폴리는 2조5000억원의 실적을 기록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반면에 서울옥션은 5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우리가 좀더 분발해야 할 때임을 느낀다. 이 사장이 제2의 전기를 마련할 거라 믿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