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신종 ‘걸크러시’다. 요즘 이 여자 ‘오해영’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울고 웃는다.
지극히 평범한 스펙. 굳이 내세울 건 없지만, 그렇다고 감출 것도 없다. “제가 소개팅 나와서 예의상 두 시간도 같이 못 있을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재빠른 손동작이 얼굴로 향한다. 눈에 띄지 않는 외모, 내일 당장 사표를 던져도 될 만한 여유까진 부족한 집안환경, 대단치 않은 학벌, 대기업에 다니지만 승진에선 밀리는 대리 오해영. 하지만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거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소녀가장’은 아니다. 취업 문턱에서 번번히 미끄러질 학벌도 아니다. 번듯한 대기업 대리라는 직함도 있다.
다만 예쁜데 성격도 좋고 공부까지 잘 하는 동명이인 덕에 학창시절 내내 ‘그냥’ 오해영이라고 불리며 비교 당한 ‘억울한 인생’의 주인공이다. 일생 일대의 트라우마는 사춘기 시절 형성됐다. 결혼 전날 파혼을 맞는 비극도 안고 있다.
‘흙수저’라 불리지만 따지고 보면 누구라도 감정이입엔 무리가 없는 보통 여자다. “내가 오해영”이라는 ‘자기 고백’이 줄을 잇는 이유다.
‘그냥’ 오해영을 연기하는 배우 서현진(31)은 “오해영이 예뻐보이는 이유는 측은지심 때문”이라며 “사람들은 연민에 약하다. 오해영이 안쓰러워 다들 ‘쟤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현진은 ‘애틋한’ 오해영을 만나 연예계 생활 15년 만에 모처럼 활짝 폈다.
소주 한두 병은 마신 듯 적당히 혀가 풀린 만취 연기에선 배우의 기본요건으로 꼽히는 ‘발음과 발성’을 살린 디테일이 돋보인다. 기분 좋은 상상에 세상을 다 가진 듯 설레다가도 애써 꺼내지 않은 열등감에 불똥이 튀면 싸늘하고 매정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결혼식 전날 이별을 통보받은 뒤 꾹꾹 눌러뒀던 감정을 쏟아내는 장면이나 탱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능청스러운 연기에선 다년간 착실히 한 길을 걸어온 서현진의 내공이 돋보인다.
“여배우로의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고민”(‘또 오해영’ 송현욱 감독)하는 자세는 현실적인 연기로 묻어난다. 2006년 ‘황진이’를 통해 연기자로 전향한 뒤 쌓아온 경력치가 폭발한 일상연기다. 서현진을 두고 업계에선 김선아, 공효진, 황정음을 잇는 ‘로코퀸’으로 부른다.
서현진은 SM엔터테인먼트의 흑역사로 불리는 실패한 걸그룹 ‘밀크’로 가요계에 먼저 데뷔했다. 그 때가 서현진이 열여섯이었던 2001년이었다. 고작 1년이 조금 넘는 활동 이후 그룹은 해체됐다. 그룹은 실패했고, 서현진은 연기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커다란 눈, 오똑한 콧날의 인형같은 여배우들의 얼굴과는 거리가 있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인공미의 흔적을 굳이 찾기 힘든 외모다. 단정하고 튀지 않는 외모 덕에 서현진은 사극에서의 섭외가 많았다. ‘황진이’ 이후 MBC ‘신들의 만찬’, ‘짝패’, ‘제왕의 딸 수백향’, ‘불의 여신 정이’, tvN ‘삼총사’에 이르기까지 서현진은 다양한 배역을 맡아 연기했다. 서현진이 맡은 캐릭터의 매력도는 떨어졌다. 주인공을 궁지에 몰았고(2012 신들의 만찬), 주인공과 친구이면서 그를 질투(2013 불의 여신 정이)하기 바빴다. 주연급 연기자로 활약했지만 선악 구도가 선명한 드라마에서 시청자는 상냥한 여주인공에게 애정을 보낸다. 서현진은 연기자로서 두각은 드러냈으나 사랑받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2014년 방송된 케이블 채널 tvN ‘식샤를 합시다2’는 서현진의 연기 인생을 바꿔놓은 드라마다. 어린 시절의 별명은 백돼지. 식탐을 끊지 못해 뚱뚱했던 유년시절은 따돌림 당하고 놀림받기 일쑤였다. 죽을 각오로 덤빈 다이어트로 날씬한 몸을 얻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프리랜서 작가로 생활하며 원고료 대신 김 세트를 받는 가난한 청춘을 연기한 서현진에게서 새로운 배우의 모습이 발견됐다.
‘또 오해영’을 연출하고 있는 송현욱 감독은 “오해영에 대한 공감대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배우를 찾고 있었다. ‘식샤를 합시다2’ 중 서현진이 공원에서 우는 신을 보면서 배역의 아픔을 진실로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보였다”며 “이 배우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살아있는 캐릭터로 오해영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지난 15년간 사람들은 서현진을 몰랐다. 서현진이 자신의 강점을 보여줄 공간은 많지 않았다. 보기에 따라 다소 ‘억울하고 애틋할 수 있는’ 20대를 보낸 이후 마침내 두각을 드러냈다. 송현욱 감독은 서현진에 대해 “몇 번이고 ‘다시’를 외치며 좋은 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보여줘 주변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송현욱 감독)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말 그대로 “물이 제대로 올랐다”(박호식 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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