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안방극장은 요즘 ‘아저씨’에 푹 빠졌다. 잘 빚어놓은 꽃미모를 자랑하던 20대 남자배우 대신 편안함과 깊이를 두루 갖춘 40대 남자배우들이 드라마를 장악한다. 신조어가 생겨났다. ‘중년파탈’, 중년과 치명적인 매력남을 뜻 하는 ‘옴파탈’의 합성어다. 여성 시청자들은 “중년남에 빠지면 답도 없다”는 자조섞인 반응으로 이들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올 상한기 순수한 첫사랑의 절절한 감성을 보여준 지진희(SBS ‘애인있어요’), ‘재한 선배’ 신드롬을 불러온 조진웅(tvN ‘시그널’)을 시작으로 안방극장은 이서진(45, MBC ‘결혼계약’), 안재욱(45, KBS2 ‘아이가 다섯’), 박신양(48, KBS2 ‘동네변호사 조들호’) 지성(40, SBS ‘딴따라’)이 그 주인공들이다. 40대 남자배우들이 안방을 꿰차자 드라마 속 남녀 주인공의 나이차가 벌어졌다. 남자주인공은 40대인데, 여자주인공은 20대 초반에 머무른다. 띠동갑을 훌쩍 넘었다. 삼촌과 조카뻘의 나이차다.

최근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결혼계약’은 배우 이서진(45)과 유이(28)가 호흡을 맞췄다. 애절한 정통멜로를 선보여야 하는 두 사람의 나이차는 무려 17세. 띠동갑을 훌쩍 넘어선 주연배우의 캐스팅에 드라마는 시작도 전에 물음표가 찍혔다. 안 어울린다, 멜로가 가능하겠냐는 시각이었다. 드라마는 승승장구했다. 드라마 관련 기사엔 “이서진이 유이를 진짜 좋아하는 것 같다”는 댓글까지 등장했다. 종영 직후 불거진 유이와 이상윤의 열애설 기사엔 ‘이서진 의문의 1패’라는 댓글이 달렸다. 나이차를 초월한 ‘멜로 연기’가 통했다는 얘기다.

KBS 2TV ‘동네변호사 조들호’ 커플의 나이차는 더 벌어졌다. 박신양(48)과 강소라(26)의 나이차는 무려 22세. 일과 멜로를 교묘하게 오가는 드라마다. 강산이 두 번 변한 시간의 길이도 무색했다.

SBS ‘딴따라’에선 배우 지성과 혜리가 만났다. 올해로 마흔이 된 지성과 혜리(23)의 나이차도 17세다. 적지 않은 나이차는 두 사람에게도 고민이었다. 지성은 혜리를 처음 만날 당시 특별한 주문을 했다.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오빠로 생각해달라”는 것이었다.

40대에 접어들진 않았지만 불혹을 앞둔 남자배우들도 나이 어린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중이다. 배우 고수(39)는 진세연(23)과 MBC ‘옥중화’를 끌어가는 남자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두 사람의 적지 않은 나이차는 드라마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고수는 훗날 진세연이 연기할 옥녀의 어린시절인 정다빈과의 첫 만남에‘꼬맹이’라고 부르며 인연을 맺었다. 방영을 앞둔 SBS ‘미녀공심이’에서도 남궁민(39)과 민아(24)가 열다섯 살의 나이차를 뛰어넘어 호흡을 맞춘다.

남녀주인공의 적지 않은 나이차는 과거였다면 환영받지 못한 캐스팅이다. 특히 남녀 주인공의 호흡이 관건인 멜로드라마라면 더욱이 그렇다. “나이차가 적을수록 한 화면 안에 담긴 ‘투샷’이 보기 좋고, 생동감 있는 그림이 연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 드라마 관계자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러나 최근 인기를 모은 40대 남자배우들의 경우 연기력과 인지도를 두루 갖춘 안정기에 접어든 배우라는 점을 주목한다. 한 드라마제작사 관계자는 “오랜 배우 활동으로 연기력의 기복이 없고, 대본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며 “20~30대에 비해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나이대가 주는 편안함이 40대 남자배우들에게 묻어나는 것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속 캐릭터는 30대 배우들이 맡아야할 연령대로 설정된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도 남녀 주인공의 나이차를 벌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리모콘을 쥐고 있는 여성 시청자의 나이대를 공략한 전략이다.

한 드라마 작가는 “몇 해전까지 여성들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상승을 반영한 연상연하 커플을 다룬 드라마가 많았다면 최근엔 남자 주인공의 나이가 다시 역전한 드라마를 집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나이차가 있는 중연 남성과의 로맨스는 여성 시청자들에게 안정적이고 편안한 심리, 기댈 수 있는 상대라는 판타지를 줄 수 있다. 먹고 살기 힘들어진 시대에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혼계약’을 통해 ‘인생연기’라는 호평을 얻은 이서진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40대 배우로서의 강점을 들려줬다. 이서진은 “감정연기를 하는 데에 있어 나이가 들며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사람에 대한 배려가 생긴다. 그런 부분이 연기를 할 때에도 반영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0대에 접어들었어도 요즘엔 다들 관리를 잘하다. 아저씨이지만 아저씨처럼 보이지만은 않는 외모, 거기에 감정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가 더해져 40대 배우들이 멜로의 중심에도 나올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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