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31일부터 8일 동안에만 전국에서 무려 3800여건에 달하는 소음민원이 접수됐다. 하루에 480건 정도의 민원이 접수된 셈이다. 선거유세의 경우 소음에 대한 규제가 없다보니 75dB를 훌쩍 넘는 일도 다반사다. 선거철만 되면 온통 거리가 확성기 유세에 유세 음악으로 도배된다. 이만한 소음도 없다.
하지만 확성기 유세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은 저마다 엇갈린다. 헌법재판소 조차 “소음 규제 입법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정온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의 침해를 가져왔다”며 찬반이 갈린다. 선거철만 되면 으레 발생하는 고질병 ‘확성기 유세’는 그러나 선거를 ‘조용’하게 치루는 미국ㆍ영국 등 선진국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가가호호 방문해 선거운동 펼치는 영국, 광고와 공약으로 말하는 미국=시끄럽다고 신고 당할 수도 있다. 온갖 인신공격이 오가는 선거판에서 선거소음은 또 다른 약점이 될 수 있다. 미국 후보자들이 가두연설을 펼치지 않는 이유다. 한국처럼 무대를 설치하고 봉사자들이 춤을 추거나 행인들에게 깎듯이 인사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은 주로 우편물과 야외 플래카드, 간판 광고, 텔레비전ㆍ라디오를 통해 선거운동을 펼친다. 연설을 하더라도 대학교나 시청 등 강당을 빌려 특정 공간에서 유세를 한다. 후보들은 적어도 4번 이상 텔레비전 앞에서 혹은 강당에서 토론회를 갖는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추상적인 정책을 외치지도 않는다. 후보자들은 특정 시민단체들과 이해단체 등과 접견해 이들의 입맛에 맞는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한다. 이들의 공고한 지지를 얻기 위해 추상적인 공약보다도 이들의 입맛에 맞는, 당장 논의할만한 정책주제를 가지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다.
영국의 정치는 길거리에서 시작되지만 ‘조용’하다.
당원들은 관할 지역을 돌며 홍보물을 나눠준다. 오랜 시간동안 유권자들의 성향을 분석해 선거를 앞둔 시기에 ‘맞춤 홍보물’을 배포한다. 선거현수막도, 선거차량도, 선거벽보도 없다. 캠페인 음악에 맞춰 춤추는 후보자와 봉사자들의 모습도 당연히 발견할 수 없다. 영국에서 ‘선거 기간’을 아는 방법은 간단하다. 후보자를 후원하는 당원 봉사자가 집의 초인종을 누르면 그 순간, ‘나’를 향한 후보자의 선거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TV와 신문 보도, 그리고 가가호호 유권자의 집을 방문해 이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는 것이 영국의 전형적인 선거운동 방식이다.
이외에도 프랑스, 독일, 덴마크 등 주요선진국들은 ‘조용’한 선거운동을 치룬다.
▶韓ㆍ日 유권자의 골칫거리, ‘선거차량, 그리고 소음’=지난 해 일본 지요다구 의회 의원선거(지방선거)에 출마한 무소속 출신의 야마시타 다케오리는 선거운동기간동안 선거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선거 자동차의 소음은 정말 짜증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일본도 한국처럼 시끌벅적한 선거유세를 펼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본 후보자들은 선거차량에 올라타 확성기를 틀고 지지를 호소한다. 이 시간보다 이르거나 늦게까지 유세를 펼치면 선거법 위반이 된다. 때문에 선거차량의 소음이 싫은 일본인들은 눈에 불을 켜고 유세 시간을 지키지 않는 차량을 찾아 신고하기도 한다.
일본 선거차량의 특이점은 정지한 상태에서의 가두연설은 법적으로 금지된다는 것이다. 일본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후보자들은 움직이는 차량에서의 가두연설에 대해서만 규제를 피할 수 있다.
사실 확성기를 활용한 선거운동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대만도 선거벽보, 현수막, 선거차량과 온갖 음악이 가득한 시끌벅적한 선거운동을 펼친다. 하지만 확성기를 활용한 이른바 ‘소음 선거운동’은 국민에게 많은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보다 ‘성숙한’ 선거운동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전선거운동 규제 없는 서구 vs 규제 속에서 소음선거 양산하는 韓ㆍ日=영국과 미국, 그리고 다수의 ‘조용한’ 선거를 치루는 서구권 국가와 ‘시끄러운’ 선거를 치루는 한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선거법이다.
영국, 미국, 독일, 캐나다, 벨기에, 덴마크 등 주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운동기간에 대한 규제가 없다. 총선거비용을 통제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국가는 짧은 시간 내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기보다는 유권자들의 기호에 맞춰 어떤 공약을 피력하느냐에 집중한다.
물론, 선거운동기간 규제가 있는 서구권 국가도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감독의 주체와 권한을 여러 기관에 부여해 유권자의 입장을 고려한 선거운동을 엄격하게 규제한다. 선거 일주일 전부터 시나 국가가 지정한 선거벽보 게시판에 게시되는 포스터들은 후보자들의 정치공약을 설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편, 12일 간의 선거운동기간을 부여하는 일본에서 ‘선거차량’은 후보자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라는 지적도 있다. ‘소음 선거’를 이유로 선거 차량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야마시타 다케오리는 결국 낙선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은 “SNS 홍보나 다른 홍보수단에 대한 규제가 너무 철처하기 때문”이라며 “선거 차량의 확성기에 반대하는 여론은 73%에 달하지만 선거 차량을 대체할 수 있는 홍보수단을 법이 허용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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