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닝복 차림 ‘세르게이 브린’ 구글X 이끄는 엔지니어 -대외업무 맡는 ‘에릭 슈미트’...의사 결정권자 ‘래리 페이지’ -구글의 M&A 기업 189개사…지주사 알파벳 설립 의미는?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민상식 기자]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을 관전하기 위해 지난 12일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ㆍ42) 구글 공동창업자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브린은 입국 첫날 대국장인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 덥수룩한 수염에 트레이닝복 차림의 편안한 복장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대국 관전을 마친 뒤에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서울 강남역 일대를 돌아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브린에 앞서 첫 대국이 열리기 하루 전인 8일에는 에릭 슈미트(Eric Schmidtㆍ60) 알파벳(구글의 지주회사) 회장이 방한했다. 최근 몇년 사이 한국을 여러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슈미트는 늘 말쑥한 정장 차림이다.

이런 상반된 옷차림에서 드러나듯 슈미트와 브린의 역할은 뚜렷하게 나뉜다.

▶구글 창업 3인방의 역할=에릭 슈미트 회장은 구글의 공동 창업자는 아니다. 2001년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Larry Pageㆍ42)와 세르게이 브린과의 면접을 통해 구글에 합류한 이후 검색엔진에 불과했던 구글을 글로벌 IT기업으로 성장시킨 경영자다.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을 다니던 1973년생 동갑내기 친구였던 페이지와 브린은 1998년 구글을 공동 창업했고, 3년 후 슈미트 회장이 최고경영자(CEO)로 합류했다.

지난해 8월 구글이 지주회사 ‘알파벳’(Alphabet)을 설립한 이후에는 슈미트는 알파벳의 회장으로서 대외 업무를 맡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해외를 다니며 삼성 등 글로벌기업과의 협력문제도 논의한다.

슈미트는 혁신적인 벤처기업을 키우는 역할도 한다. 슈미트 회장은 2010년 벤처캐피탈 ‘이노베이션 엔데버’(Innovation Endeavors)를 설립해 신생 벤처기업(스타트업)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세르게이 브린의 공식적인 직함은 구글 지주사 알파벳의 사장(president)이다.

하지만 브린의 진짜 역할은 혁신적인 아이디어 개발에 있다.

오랜 개발자 경험을 가진 ‘엔지니어’ 출신의 브린은 사내 비밀프로젝트 연구조직 ‘X’를 통해 창의적인 연구개발을 이끌고 있다.

평소 언론 노출을 꺼리는 브린이 아무런 통보 없이 이번 대국장에 불쑥 나타난 것을 보면 그만큼 이번 대국이 갖는 의미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알파벳의 CEO로서 구글의 의사 결정권자로 활동한다. 구글의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고 기업가치를 키우는 데 주력한다.

실제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인수하려다 거절당한 인공지능 업체 딥마인드를 구글이 성공적으로 인수한 것은 신사업 전략을 세우는 래리 페이지의 역할이 컸다.

▶구글의 남다른 혁신 DNA=2004년 기업공개(IPO)를 하던 당시 구글의 시가총액은 230억 달러(한화 약 26조7000억원)였다. 12년이 지난 현재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의 시가총액은 5000억 달러(약 580조원)를 넘어서 20배 이상 뛰었다. 특히 이세돌 9단과 다섯 판의 대국을 벌인 최근 일주일 동안에만 알파벳 시가총액이 약 500억 달러 늘어났다.

IPO 당시 온라인 검색 광고가 유일한 수익원이었던 구글은 혁신적인 신생산업에 아낌없이 투자해 이처럼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 구글의 사업 영역은 만물상 수준이다.

1998년 창업 이후 구글이 인수ㆍ합병(M&A)한 기업은 189개에 이른다. 사업 영역은 무인자동차와 로봇, 드론, 생명과학, 우주사업 등으로 다양하다.

최근 들어서는 모바일과 신사업 분야에 대한 투자가 두드러진다. 구글이 인수한 기업 189개사 가운데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에 합류한 기업은 27곳이다. 모바일 분야에서 안드로이드와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도다. 2005년 구글이 5000만 달러에 인수한 안드로이드는 구글의 M&A 중 가장 큰 성공사례로 꼽힌다.

또 무인자동차 등 창의적인 사업을 연구하는 ‘X’에 합류한 업체는 15곳이며, 이중 로봇연구 기업이 7곳에 달한다.

사물인터넷(IoT) 분야를 연구하는 ‘네스트’(Nest)에는 3곳,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에는 2곳이 합류했다. 딥마인드는 구글이 2014년 4억 달러에 인수한 영국의 인공지능 회사다.

구글의 도전정신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경쟁 IT기업인 페이스북과 애플이 창업 이후 각각 57곳과 78곳의 기업을 인수한 것과 비교하면, 189개사를 인수한 구글이 새로운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글의 이런 혁신 DNA가 미국의 ‘버닝맨’(Burning Man) 페스티벌과 관련이 깊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매년 여름 미국 네바다 주 사막에서 열리는 버닝맨 페스티벌은 개방과 공유를 토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술 작품을 만들고 파괴하는 축제다.

이 축제에 매년 참가하는 버닝맨 마니아인 구글 창업 3인방은 자신들이 즐기던 버닝맨 축제의 정신(공유ㆍ창조ㆍ자율)을 구글로 옮겨왔다.

비밀 연구조직 ‘X’는 버닝맨 축제에서 비롯된 구글 기업문화의 상징이다.

2010년 만들어진 비밀연구조직 X는 세르게이 브린 직속의 부서로, 구글에서도 가장 유능한 엔지니어만 모아놓은 최고의 싱크탱크다.

X는 다른 기업 연구소와 달리 제약 조건이 없이 각 프로젝트마다 막대한 연구자원이 투입된다. 특히 단기 실적에 대한 압박이 없어 연구원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X에서는 무인자동차나 스마트 콘택트렌즈, 우주로 가는 엘리베이터, 하늘을 나는 풍력발전소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연구가 이뤄진다.

브린은 2004년 투자자들에게 “사업 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며 “단기 실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고위험 고수익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자신의 경영철학을 밝힌 바 있다.

▶알파벳의 의미=구글은 지난해 8월 지주회사인 알파벳 체계로 재편됐다. 이같은 지배구조 개편은 주요 사업을 각 실무 경영진에게 맡기고, 페이지와 브린이 지주사 알파벳에서 신사업에 대한 장기 전략을 짜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알파벳은 핵심 사업부인 구글을 비롯해 벤처캐피털 부문 ‘구글 벤처스’, 규모가 큰 회사에 투자하는 ‘구글 캐피털’, 창의적 사업 중심의 ‘X’, 생명과학 분야 ‘베릴리’(Verily),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피버’(Fiber), 헬스케어 분야 ‘캘리코’(Calico), 사물인터넷 부문 ‘네스트’(Nest) 등 자회사 8곳으로 구성돼 있다.

인터넷 검색과 지도, 안드로이드, 유튜브, 크롬 등을 맡고 있는 구글은 알파벳의 가장 큰 자회사가 됐고, 수석 부사장이었던 순다 피차이(Sundar Pichai)가 구글의 CEO를 맡고 있다.

알파벳은 8개의 자회사를 통해 이미 인공지능과 무인자동차, 보행로봇, 초고속인터넷망 서비스, 헬스케어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정상급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알파벳으로의 개편 이후 구글의 신사업 확장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알파벳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A부터 Z까지 26자의 알파벳처럼 26개 분야로 확장하겠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에릭 슈미트 회장은 지난해 알파벳 설립 이후 한 컨퍼런스에서 “26개(알파벳 숫자) 이후에는 원주율(파이)과 같이 무한대의 숫자를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구글의 혁신 DNA도 변함없다.

래리 페이지는 지난해 8월 알파벳 출범을 알리는 서한을 통해 알파벳의 혁신성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알파벳은 인류 최고의 혁신을 상징하고, 구글 검색 방식의 핵심이기 때문에 알파벳이란 이름을 선호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