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기훈 기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직장 동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야 하는 남자가 있다. 때로 노동의 비인간성과 그로 인한 설움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아내와 아들의 생계를 위해 어떤 모욕도 감내해야 하는 그다. 그는 ‘피에르’란 이름의 개별인이기도 하고 ‘아버지’라고 불리는 모든 이들이기도 하다.
스테판 브리제 감독의 ‘아버지의 초상’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아버지들의 ‘미생’을 담고 있다. 또 ‘아버지의 초상’은 거장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두 영화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다루면서도 가슴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실제 해외 언론은 “스페판 브리제는 다르덴 형제의 뒤를 이어 담담한 일상으로 강렬한 드라마를 완성했다”(버라이어티)고 호평하는 등 그를 다르덴 형제의 후계자로 지목하고 있다. 아울러 두 영화는 프랑스와 벨기에를 배경으로 삼았지만 한국의 현실을 다룬 ‘미생’과 ‘카트’가 오버랩되는 영화기도 하다.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은 신자유주의의 높은 파고에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삶을 다뤘다.
복직을 앞둔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에게 어느날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복직이 무산됐고 직장 동료들이 그녀와 일하는 대신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것. 하지만 투표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재투표의 기회가 주어지자 산드라는 16명의 동료들을 찾아 설득에 나선다.
“보너스 대신 나를 선택해줘.” 산드라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말을 어렵게 꺼내고 어떤 동료들은 애써 그녀의 시선을 외면한다. 산드라를 응원하거나 마음을 바꾼 동료들도 있는 한편 산드라를 거칠게 몰아세우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감독은 동료들의 선택을 함부로 재단하려 들지 않는다. 동료들에겐 나름대로 절박한 사정이 있고 단지 각박한 현실 속에서 동료의 삶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현실이 애달프다. ‘보너스냐, 동료의 복직이냐’ 마지막 재투표 순간까지 희망과 좌절을 오가는 나흘간의 여정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다만 다르덴 형제는 일자리를 되찾기 위한 산드라의 씩씩한 발걸음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산드라가 겪는 일이 그저 남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 일 수도 있음을 상기시킨다.
▶스테판 브리제의 ‘아버지의 초상’=한국 개봉일로는 약 1년의 시차를 두고 있지만 스테판 브리제의 ‘아버지의 초상’은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다.
회사의 일방적 구조조정으로 일순간 백수로 전락한 티에리(뱅상 랭동)는 2년간 구직활동 끝에 대형마트의 보안요원으로 취직한다. 매장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통해 물건을 훔치는 고객은 없는지, 또 근무수칙을 어기는 동료는 없는지 살피는 게 그의 임무다.
어렵사리 얻은 일자리지만 티에리는 곧 도덕적 딜레마와 마주한다. 보안요원으로서의 직업윤리와 도덕감정은 수시로 충돌한다. 먹고 살기 위해 먹을거리를 훔친 ‘장발장’ 같은 노인 앞에서 피에르의 눈동자는 흔들린다. 또 고작 할인 쿠폰을 빼돌렸다는 이유로 적발된 동료가 해고되고 결국 해고된 동료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티에리의 고뇌는 극에 달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생각하면 고뇌도 가슴 한켠에 숨겨둘 수밖에 없는 티에리다. 영화 ‘나를 기다리는 시간’의 산드라가 동료들의 연대에 자신의 복직을 호소해야만 하는 입장이라면 ‘아버지의 초상’의 피에르는 밥벌이를 위해 동료들을 외면할 수밖에 입장이다.
롱테이크와 핸드헬드를 이용한 담담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는 밥벌이의 모욕도 견뎌야 하는 ‘아버지의 초상’을 씁쓸하게 잡아내고 있다. 다만 부조리를 견디면서 살아내야 하는 티에리의 삶에 대한 의지가 쓸쓸하게 빛난다.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연기를 선보인 프랑스 국민배우 뱅상 랭동은 이 영화로 지난 제68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평범한 샐러리맨이 가족들을 지켜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아버지의 초상’은 이 시대 ‘미생’들에게 건네는 위로기도 하다.
오는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9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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