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스포츠>가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를 연재합니다. 앞서 연재된 시즌1이 기존에 출판된 단행본 '킥 더 무비'를 재구성한 것이라면 시즌2는 새로운 작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축구로 만나는 셰익스피어의 명작 <십이야>오늘 소개할 작품은 여러 면에서 독특한 영화입니다. 바로 <쉬즈 더 맨(She’s the man)>입니다. 축구가 하고 싶어 쌍둥이 오빠의 변장을 한 소녀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건 영화의 원작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Twelfth night)>라는 사실입니다. 1601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앞에서 초연되었으니, 무려 4백년 전의 작품이죠.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미 브라질과 인도네시아에서 축구 영화로 리메이크된 바 있습니다. 브라질 판에서는 코린티안스와 팔메이라스 간의 라이벌 관계로, 인도네시아 판에서는 자카르타와 반둥 간의 더비 매치로 각각 재해석되었지요.<십이야>는 지중해의 어느 섬 일리리아(Illyria)를 배경으로 진행됩니다. 이란성 쌍둥이지만 외모가 판박이인 영국인 남매 세바스찬과 바이올라는 항해 도중 폭풍을 만나 일리리아에 난파합니다. 누나인 바이올라는 급한 김에 남동생 세바스찬의 옷을 입고 동생을 찾아 나섭니다. 그 와중에 일리리아의 영주인 오시노 공작을 만나게 되죠.바이올라를 남자인 세바스찬으로 착각한 오시노 공작. 그는 자신이 사모하던 여인 올리비아에게 사랑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 바이올라를 전령사로 고용합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남장한 바이올라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되죠. 반면 바이올라는 자신을 남자라고 믿는 오시노 공작에게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착각이 눈더미처럼 커지면서 이들의 사랑은 꼬여가게 되죠.자, 그렇다면 셰익스피어의 <십이야>가 어떻게 축구 이야기로 바뀌었는지 살펴볼까요?축구가 하고 싶은 소녀, 남장을 하다. 미국의 어느 소도시. 바이올라는 축구를 좋아하는 소녀입니다. 콘웰(Conwell) 고등학교 여자축구부에서 공격수로 맹활약 중인 바이올라. 하지만 부원이 부족하다며 학교는 여자 축구부를 일방적으로 해체합니다. 다급한 마음에 남자 축구부 주장을 맡고 있는 애인 저스틴에게 사정해 봅니다. 하지만 저스틴은 축구는 남자들의 운동이라며 바이올라를 무시하죠. 화가 난 바이올라는 저스틴을 차 버리고 아이디어를 하나 냅니다.바로 그녀의 쌍둥이 남동생 세바스찬이 락밴드 공연으로 런던에 다녀오는 동안, 세바스찬이 다니는 일리리아 고등학교 축구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일리리아 축구팀은 바이올라와 저스틴의 학교인 콘웰과 12일 후 라이벌 경기를 가질 예정입니다. 바이올라는 일리리아 축구팀의 일원이 되어 자신을 버린 콘웰과 저스틴에게 복수할 꿈을 꿉니다.잘 아는 미용사의 도움으로 세바스찬으로 분장한 바이올라. 그녀는 일리리아 고등학교에 들어가 남자 축구부에 지원합니다. 그 과정에서 축구부의 주장인 오시노를 만나게 됩니다. 잘 생기고 순수한 오시노에게 첫 눈에 반한 바이올라. 하지만 오시노는 남장한 바이올라를 좋은 친구로만 여길 뿐입니다.여자 축구부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보였지만, 일리리아 축구부에서는 후보 신세를 면치 못하는 바이올라. 그런 바이올라를 오시노는 도와줍니다. 대신 바이올라는 오시노가 짝사랑하는 올리비아와의 관계를 개선시켜주기로 약속합니다.하지만 올리비아는 자신에게 전혀 관심을 안 보이는 남장한 바이올라에게 사랑을 느낍니다. 오시노는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분노하게 되죠.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고민을 털어놨던 바이올라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한 겁니다. 사실은 여자인 바이올라가 오시노를 좋아하는 줄도 모르고요.이렇게 사랑의 관계가 꼬이면서, 콘웰과의 축구 시합은 다가옵니다. 과연 주인공들은 각자의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요? 바이올라는 자신을 내친 모교를 향해 복수할 수 있을까요? 사커와 풋볼, 미국과 영국이라는 이란성 쌍둥이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시기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해가 떠오르던 시기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치세 하에 영국은 스페인이나 프랑스가 쥐고 있던 헤게모니를 빼앗고 세계 제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미국은 그런 영국의 황금기가 낳은 이란성 쌍둥이입니다. 비록 치열한 전쟁을 거친 후 독립했지만, 영국의 민주주의와 개척 정신은 그대로 미국 사회에 이식되어 오늘날까지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이런 두 나라의 관계는 스포츠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비록 오늘날 영국과 미국이 즐기는 스포츠는 많은 면에서 다르지만 그 뿌리는 같다는 게 중론입니다. 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미식축구는 영국의 럭비를 변형시킨 것이고, 야구는 영국의 크리켓(cricket)과 라운더스(rounders)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축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오늘날 미국 스포츠계에서 축구의 위상은 아직 높지 않지만, 메이저리그 사커(MLS)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 여자 대표팀은 이미 세계적인 강팀이 되었죠.우리는 이 영화, <쉬즈 더 맨>을 보면서, 스포츠에 이어지는 미국과 영국의 기묘한 관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바이올라와 세바스찬은 성별만 다를 뿐, 성격과 외모 등 대부분의 면에서 비슷한 점을 공유합니다. 시끄러운 락음악을 좋아하고 반항적인 세바스찬과 마찬가지로, 바이올라 역시 요조 숙녀가 되길 바라는 어머니의 바램은 무시하고 흙투성이에서 축구를 하고 무도회장에서 개걸스럽게 닭다리를 물어뜯습니다. 게다가 남장을 하게 되니 세바스찬의 친구들조차 사실은 남장한 여자라는 사실을 못 알아차릴 정도죠. 이처럼 성별만 다를 뿐 구별하기 힘든 세바스찬과 바이올라의 관계는, 비록 독립을 통해 다른 나라가 되었지만 역사, 문화, 전통 면에서 비슷한 뿌리를 공유하는 영국과 미국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역사적 뿌리가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오늘날 두 나라의 문화는 많이 다른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미국 고등학교 축구 경기는, 우리가 흔히 아는 유럽 축구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치어리더와 마스코트의 춤사위 속에 등장하는 선수들. 관악대의 연주에 맞추어 여유롭게 음식을 먹으며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들의 모습. 이런 모습들은 전투적이고 집단적인 서포터 문화가 발달한 유럽과는 확연히 대비됩니다. 오히려 미식축구나 야구장의 모습을 연상시키죠. 축구장의 분위기만이 아닙니다. 영화에는 일리리아의 감독으로 유명한 영국 배우 비니 존스(Vinnie Jones)가 등장합니다. 극중에서도 영국인으로 등장하는 그는 시종일관 고집스럽고 엄한 표정으로 선수들을 다그칩니다. 거의 말이 없지만, 어쩌다 입을 열어도 욕설과 독설, 그리고 블랙 유머가 전부죠. 반면 그의 지도를 받는 미국 학생들은 시종일관 수다스럽고 쾌활하며 요란스럽습니다. 영화 속 과묵한 비니 존스와 요란스러운 미국 학생들의 대비도 그런 성격과 시각 차이의 연장선인 것 같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서로 다른 축구장 분위기도 마찬가지겠지요. 마치 바이올라와 세바스찬이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것처럼, 영국과 미국의 분위기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소동을 지켜보다 못한 비니 존스가 "닥치고 너희들의 풋볼을 해라!"라고 소리지르는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풋볼이 축구를 의미하는 영국 및 전세계와, 풋볼을 미식축구로 이해하고 사커라는 말을 고집하는 미국의 차이가 드러나는 장면이기 때문이죠. 이처럼 이 영화는, 쌍둥이와 축구라는 소재를 통해 같은 문화적 뿌리를 가진 두 나라가, 한편으로는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작인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축구라는 스포츠가 영국에서 유래되었듯이, 오늘날 다문화 국가 미국을 이루는 많은 가치들이 결국 영국의 전통과 문화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나라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싫어할지도 모르지만요.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헤럴드스포츠>에서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1(2014년 08월 ~ 2015년 08월)을 연재했고 이어서 시즌2를 연재 중이다. 시즌1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를 재구성했고, 시즌2는 책에 수록되지 않은 새로운 작품들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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