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농대 불합격‘ 통보’→후기공대 가려 서울행→낙방 확인하러 다시 수원행→별도명단서 합격 확인

스스로를 ‘논산 촌놈’이라 부르는 윤여두 회장은 칠십 평생을 오롯이 농기계 연구개발, 그리고 판매에 매달렸다. 윤 회장은 기자와의 만남에서 ‘운명’, ‘생존본능’이라는 말을 자주 구사하며 특유의 적극성과 구수한 입담으로 과거를 뚜렷하게 회상했다.

윤 회장과 농기계와의 인연은 ‘운명의 갈림길’에서 비롯됐다. 살아오면서 가장 큰 인생의 변환점(터닝포인트)이라고 말하는 윤 회장과 서울대 농대, 그리고 농기계와의 인연은 드라마틱하다.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

서울농대 시험을 누구보다 자신 있게 치르고 합격을 낙관했지만 합격자 명단을 대신 확인해 준 이로부터 ‘윤여두’라는 이름 석자를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전갈을 받고 몹시 낙담했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모 방송사의 수원 주재 기자로 윤 회장 맏형의 절친한 후배였던 것.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가족과 친지, 동네 사람들의 낙담과 실망의 시선이 몰려드는 참담한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결국 후기입학을 위해 H대 공대로 입학원서를 내러 서울행을 택했다. 그런데 수원역을 막 지나치기 전 윤 회장은 이대로 지나칠 수 없다며 수원역에 내렸다. 더 밤이 짙기 전에 발걸음을 재촉해 수 km를 걸어 현장에 도착해 몇번이고 확인했으나 결과는 실망 그대로였다. 몇 번이고 더 살핀 뒤 온 길을 되돌아 가기위해 다리는 건너려는데 이상하게도 또 미련이 생겨 안개까지 자욱한 그 곳을 다시 찾아갔더니 앞 부분에 뭔가 있더라는 것. 이게 왠일인가. 별도의 우수합격자 명단이 별도로 있었고 거기에 분명하게 그 것도 상단에 자신의 이름이 또렷하게 박혀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촉박한 서류 마감시간. 합격통지서를 받아 부랴부랴 신체검사하고 입학절차를 간신히 마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기쁜 소식을 말하자 평소 맏아들 말만 믿어 온 모친은 실성까지 했다며 좀체 믿으려 하지 않더라는 것.

입학 당시 주변에선 “그깟 호미, 낫 연구하러 서울대까지 들어갔냐”며 비아냥대기도 했지만, 윤회장은 꿋꿋하게 소걸음으로 운명적으로 농기계 연구개발에 몰두했고, 결국 오늘날 ‘미스터 트랙터’라는 별명답게 이 분야 당대 최고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황해창 정책섹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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