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지정요청권 한번뿐, 무조건 체결
#1.작년 말, 스팩(SPACㆍ기업인수목적회사)상장을 준비하던 A사는 결국 상장을 연기했다. ‘지정감사제’에 따라 회계감사 신청을 했으나, 감사보수료가 너무 높다고 판단해서다. 금융당국에서 1차로 지정해 준 B회계법인은 보수료로 7000만원을 제시했다. 매년 2000만~3000만원 수준에서 감사를 받던 A사는 B회계법인과 협의를 포기하고 당국에 재지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새로 지정된 C회계법인은 1억 6000만원을 요구했다. A사는 결국 비용이 부담스럽다며 상장을 포기했다.
#2. 지난 12월 2015년 상장 막차를 탄 D사도 감사보수료가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평상시보다 2배 수준에서 가격협상에 성공, 감사비용을 전체 IPO비용(주관사 수수료, 대행사 비용 등)대비 10%수준에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D사 관계자는 “공모시장이 얼어붙은 상태에서 ‘정가’형태로 시장가가 형성된 감사보수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며 “특히 재지정의 경우 더 과한 금액을 부르는 경우가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상장을 앞둔 기업의 회계 투명성을 높여 투자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도입된 ‘지정감사제’가 예비상장사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지정감사제란 유가증권이나 코스닥시장 상장시, 금융감독원이 지정한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도록 한 제도다.
금감원은 회계법인 140곳을 선정해 지정감사 회계법인을 배정하고 회계법인은 해당 기업의 당해 사업연도의 회계감사를 진행한다.
예비 상장기업들은 지정된 회계법인과 순차적으로 협상을 벌이며 배정된 회계법인을 거부하는 재지정요청권을 한 번 행사할 수 있다.
문제는 재지정 요청이 한번 뿐이라 2차 지정 회계법인과는 무조건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회계법인에서 이를 악용, 평상시의 몇배에 달하는 감사보수료를 요구하지만 예비상장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최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E사 관계자는 “앞서 상장한 회사들에 물어보니, 재지정때는 가격이 더 올라간다며 무조건 첫 법인과 협상을 진행하라고 했다”며 “선택권이 없다 보니, 가격 인플레가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정감사를 한 회계법인이 3년간 같은 기업을 맡을 수 없는 부분도 과한 보수료를 부른다. 지난해 상장한 F사 관계자는 “한 번 보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2~3배 이상의 과한 보수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한데 금융당국에서는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와 상황은 인지하고 있다. 현재 방안을 검토중”이라며 “감사보수가 높은 문제는 양자가 서로 협의를 잘 해서 가격조정을 하라는 권고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업체들이 복수의 회계법인에서 동시에 협상을 벌일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넥스에서 이전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한 업체 대표는 “회계법인 2곳을 당국에서 지정해주고, 그 중 하나를 기업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지정감사 취지도 살리고, 현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