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인사 관행에서 당상관(堂上官) 후보는 이조의 최고 책임자인 판서(判書)가 참의(參議)와 함께 결정하지만, 당하관(堂下官) 후보는 이조 낭청(郎廳)과 함께 결정하였다. 1734년(영조 10) 9월에 대간(臺諫) 등의 후보를 결정할 일이 있었다. 이때 이조 판서 송인명(宋寅明)과 실무 관원인 이조 낭청 윤급(尹汲) 사이에 다툼이 일었다. 그 후 1736년(영조 12) 1월, 윤급은 겸보덕으로 있으면서 상소를 올려 당시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히 밝혔다.
윤급 : (붓을 던지면서) 앞으로 제가 다시 이 자리에 있을 수 없겠지만 방금 한 정사(政事)에 관해서 다 말할 것입니다.
(이조 판서가 손을 흔들며 막았다.)
윤급 : 교서관 겸교리와 사간원 헌납의 후보는 전관(銓官)의 후보를 정하는 것인데, 한 번 정사에서 다섯 명의 후보를 올리는 것은 전에 없던 일로,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 헌납 후보에 오른 세 사람의 경우는 말들이 매우 많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여론이 들끓고 있으니, 다시는 이들을 그 자리에 후보로 올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전처럼 선발을 지극히 신중히 해야 합니다.
송인명 : 나는 스스로 공론(公論)이라고 여겼는데, 낭청이 이렇게 말하니 내 어찌 아무렇지도 않겠는가. 옥당으로 옮겨 제수되면 상소할 것인가?
윤급 : (웃으면서) 제 말에 따라 하기만 한다면 직임이 바뀐들 어찌 꼭 상소할 것이 있겠으며, 판서께서도 어찌 편치 않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한 나라의 인사 책임자인 판서와 인사권을 가진 낭청이 삼사(三司)의 관원 임명을 두고 벌인 치열한 기 싸움을 보면서 공정한 인사가 이루어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강성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