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먼 록웰 그림에서 영화 영감 57점 박물관 대여 · 전시하기도

아이티 화가 비고든 작품만 900점 소장품 90% 경매로 대지진 후원

영화 ‘양들의 침묵’으로 유명한 조너선 드미(70) 감독은 30여년 전인 1980년대 중반, 뉴욕 맨해튼에 있는 자택으로부터 멀지 않은 미술관을 들렀다가 회화 한 점에 빠져들었다. 강렬한 색채가 향연을 벌이고 있었고, 작품에 담긴 상상력은 영감으로 충만했다. 아이티의 화가 윌슨 비고드의 작품이었다. 그는 250달러를 주고 그의 회화 한 점을 구입했다.

그는 당시 “오, 아이티란 말이지, 정말 흥미로운 곳이겠군”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조너선 드미 감독은 아이티의 예술과 역사에 빠져들었고, 가난하지만 활력과 영감으로 가득찬 아이티의 삶과 사람들에 매료됐다.

그는 아이티를 드나들며 예술작품을 모으는 한편, 아이티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두 편이나 찍었다. 아이티의 민주화 역사를 그린 ‘아이티:민주주의의 꿈’과 ‘어라노미스트’였다. 250달러짜리 회화 한 점으로 시작된 아이티 예술 컬렉션은 지금까지 900여점이 넘었다.

그는 지난 22일부터 미국 필라델피아 위세이컨 머터리얼 컬처에서 자신이 소장한 회화 900여점을 전시 중이며, 오는 29~30일엔 경매에 붙인다. 경매로 인한 수익은 모두 지난 2010년 아이티를 휩쓸고 수많은 이들을 죽음과 폐허로 내몬 대지진으로부터의 복구 및 재건 기금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자신이 소장한 작품의 90% 이상을 모두 팔 계획이라는 조너선 드미는 AP 등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내 삶을 간소화하고 단순화하기 위해서”라고 경매 이유를 밝혔다. “채워왔던 삶을 이제 비우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조너선 드미가 소장했다가 내놓은 작품들은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붓을 다듬어 온, 미술계의 ‘아웃사이더’로 꼽히는 아이티 예술가들의 것이 대부분이다. 조너선 드미 감독이 소장한 작품의 경매 수입금은 총 100만~140만달러(10억~15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조너선 드미 감독은 이번 전시와 경매를 자식을 키워 출가시키는 것에 비유했다.

“아마도 작품들과 함께 있었을 때를 그리워하겠지요. 하지만 작품들은 합당한 여행을 하게 되는 겁니다. 온실과 보호막을 떠나서 새 보금자리를 찾게 되는 것이죠.”

가장 적극적이고 풍성한 의미의 ‘취미’가 아닐까. 우연히 예기치 않게 만나게 되고, 외면했다면 영 관계없었을지도 모르는 여정에 기꺼이 발을 들여놓게 하며, 때로 직업적 삶에 삼투되기도 하고, 때로 세상을 성찰하는 ‘제3의 눈’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스스로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과의 교감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 조너선 드미 감독에게 ‘아이티의 예술’은 취미로 수집 대상이자, 직업적 삶에서의 한 주제였고, 세계에 기여하는 자선활동의 일환이 됐다.

현대 미국영화를 대표하는 두 거장 감독이자 절친한 동료이기도 한 ‘E.T’의 스티븐 스필버그와 ‘스타 워즈’의 조지 루카스에게도 조너선 드미 감독의 ‘아이티의 예술’과 같은 의미의 대상이 있다. 바로 미국의 화가이자 삽화가인 노먼 록웰(1894~1978)이다.

노먼 록웰은 191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약 50년간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1면 삽화를 그리며 미국에서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리게 된 화가다. 그의 작품엔 꿈과 희망, 가족, 영웅, 용기, 희망, 따뜻함 등 가장 미국적인 이상과 가치가 담겨 있는 것으로 꼽힌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는 바로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게재된 노먼 록웰의 그림을 보고 자랐으며, 노먼 록웰이 작품으로 구현한 미국적인 이상은 곧 두 거장 감독의 영화에 뿌리가 됐다. 조지 루카스는 “경제적 능력이 허락되는 순간부터” 노먼 록웰의 작품을 사모으기 시작했으며, 그 뒤를 스필버그가 따랐다.

두 감독은 작품을 구매할 때도 서로 경쟁하지 않고 의논해서 양보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필버그는 자택과 사무실 등 일상 공간의 벽에 온통 노먼 록웰의 작품으로 채웠다. 두 거장 감독은 소장품 57점을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에 대여ㆍ전시하기도 했었다. 지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1년간 기획전으로 열린 ‘텔링 스토리: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 소장 노먼 록웰 컬렉션’전이었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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