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때 작은 양보로 큰 이익 자국민 피해자에 배상…인권개선 앞장 한손엔 유화책 다른손엔 막강권력 미국·유럽과도 우호적 관계 유지 일부다처제 제한·이혼제도 개선도

‘작은 양보로 큰 이익을 얻다’

부유하지 않은 나라 모로코에서 세계적 대부호의 반열에 오른 모하메드6세의 ‘필살기’다. 언뜻 왕의 권리와 권위를 일부 포기하는 듯한 ‘개혁’을 주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강력한 왕권을 더욱 공고히 한 전략가다.

2011년 민주화 혁명 ‘아랍의 봄’이 이슬람권 국가들을 휩쓸 때에 모로코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모하메드 6세는 시위대와 대결하는 대신 ‘민주화 개헌’이라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왕권은 축소하고 의회 권한은 강화하는 게 골자다. 그런데 분명 양보는 양보지만, 양보가 아닌 내용이다.

예를 들어 개헌 이전에는 왕이 총선 결과에 관계 없이 원하는 인물을 총리로 지명할 수 있었다. 이를 왕이 총선에서 이긴 당에서만 총리를 지명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바꿨다. 그런데 왕은 총리 탄핵권도 갖는다.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행정협의회 주재권도 총리에게 넘겼다. 사법부와 입법부도 행정부에서 독립시켰다.

모든 시민은 생각과 예술적 표현, 창작의 자유를 지닌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왕은 군 통수권을 비롯하여 외교권, 사법권, 종교 관련 권한을 가졌다. 권력 분립이 됐지만, 어차피 왕 아래이고, 사상 자유를 가졌지만 여전히 종교권을 가진 왕이 통제할 수 있는 셈이다. 국민투표는 98%의 압도적 지지율로 개헌은 가결됐다.

그런데 왜 국민들은 이같은 ‘작은 양보’에도 환호했을까? 바로 선왕(先王)의 ‘철권 통치’ 때문이다.

핫산2세가 통치했던 1961~1999년은 모로코 인권의 암흑기였다. 재판도 없이 수 십년의 감옥살이를 하는가 하면 왕의 정치적 반대파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했다.

이에 모하메드6세는 유화책으로 국민들을 달랬다. 2004년 ‘모로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열어 아버지 국왕 시대에 부당한 인권 침해 사례를 조사하고 배상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모하메드6세는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2만5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약 2억달러(약 2313억원)의 배상금을 지금했다. 자연스레 철권 통치를 했던 아버지와 대조적인 인상을 남기게 됐다.

가족법을 바꿔 여성의 권리를 크게 신장시킨 것 또한 이슬람권 국가에서 눈에 띄는 혁신이었다. 2004년 모하메드6세는 여성도 남편과 함께 가족 내에서 공동의 책임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결혼과 이혼시 재산 분할에 있어서도 남녀가 동등한 권리를 지닐 수 있도록 법을 바꿨다.

아랍 국가의 국왕답지 않게 왕비의 권리를 크게 신장시켰다는 점이 그의 개혁을 한층 빛내주는 힘이 됐다. 얼굴을 드러내고 공식석상에 참여하는 왕비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국왕 부부의 인기를 높이는 데도 큰 힘이 됐다.

스스로 엄청난 부를 일궜지만 동시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국가 인류 개발 계획(INDH)’도 시행했다. 빈곤층들 사이에서도 국왕의 지지 기반을 다지게 된 계기다.

어느 덧 장기독재의 공식이 된 친서방 행보도 잊지 않았다.

모하메드6세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튼튼히 하는 동시에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과의 경제 개발ㆍ안보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약속하는 등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국제적으로도 자신의 권력을 지지해 세력을 확보하는, 중동-아프리카지역에서도 지원군을 얻을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