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발싸개 같은게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꾸”냐며 올케가 되겠다는 여자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다. 기어이 “사모님”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무서운 건 돈줄을 쥐고 있는 아버지 밖에 없다. 그러다가도 “너도 유부남인 거 알고 덤볐잖아. 네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고 말하면 통쾌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백지원이 연기하는 최진리는 SBS 주말드라마 ‘애인있어요’에서 유난히 돌출된 캐릭터다.
“다른 사람의 이해를 요구하거나 강요하는 캐릭터가 아니에요. (웃음) 드라마 초반엔 분석적으로 접근했는데, 이젠 이런 대사도 나오는구나, 이런 짓도 하는구나 해요.”
최진리는 주인공 최진언(지진희)의 배 다른 누나로, 아버지 회사의 경영권을 남편(공형진)에게 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적지향적 인물이다. 회사 경영에는 관심 없다는 동생이 마음을 바꿀까 싶어 노심초사한다. 굳이 상대를 염두할 필요가 없는 말과 행동은 안하무인이다. “뉴스에서 주로 보는 재벌2세의 모습을 참고했다”고 한다.
정작 백지원은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지난 26일 목동 SBS 사옥에서 만난 그는 차분하고 온화했다. “평소엔 말도 없고, 외향적인 성격도 아닌데다, 사람들을 여럿이서 만나지도 않는다”고 한다. 다만 음악취향은 또 반전이다. 래퍼 에미넴은 요즘 백지원이 가장 즐겨듣는 음악이다.
정서적으로 덜 자란 유아적인 인물”의 극단적인 모습을 백지원은 하이톤의 목소리와 끊임없는 막말로 연기한다. 전작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속을 알 수 없는 유신영 변호사를 연기할 때와도 딴판이다. “인물 캐릭터에 따라 목소리 톤과 데시벨도 조금씩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교적 편안하게 운용하는 장기 중의 하나”라며 “두 작품에서 사람들이 전혀 다른 배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에 외모도, 연기톤도 완벽히 갈아입었다.
2012년 ‘아내의 자격’에 이어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까지 출연하며 ‘안판석 사단’으로 얼굴을 알렸으나, 백지원은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었다.
이화여고 시절 백지원은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집과 학교 밖에 모르던” 여고생은 연극반 활동을 하던 친구의 자유로운 삶이 궁금해 연극반에 들었다.
“그 친구를 보며 다른 곳엔 어떤 삶이 있을까, 교과서 이외의 곳엔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어요. 그 때부터 세상이 신기하게 다가왔어요.”
부모님의 반대로 연극영화과 지원을 할 수 없어 차선으로 경희대 원예학과를 선택했다. “꽃을 좋아했다”고 한다. 대학에선 연극 동아리 활동으로 경험을 쌓았다. “연기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문학적으로 접근해 공부를 했다”고 한다. 배우로서 또 다른 시각을 가지는 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는 생각이다. 대학 졸업 무렵 백지원은 극단 연우무대의 연극 ‘떠벌이 우리 아버지 암에 걸리셨네’를 통해 처음으로 성인 무대에 올랐다. 전형적인 미인형의 여배우는 아닐지라도 “평범하지만 독특한 얼굴이 배우로서 쓸모가 있겠다”는 스스로의 판단은 백지원에게 연기파 조연의 한 자리를 내줬다.
무대 위엔 시대상이 담긴 작품을 통해 관객과 만났고, 그 무대들이 계기가 돼 안판석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됐다. 데뷔 20년차에 TV 드라마를 통해 얼굴을 알리고 개성 강한 캐릭터로 실시간 피드백을 받는다. 누군가는 ‘전성기’가 아니냐고 하지만 백지원은 손사래부터 친다. ”제 머릿속에 전성기라는 단어를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저 연기 오래 하고 싶어요.“
백지원의 연기관은 확고하다. “작품 안에서 내가 해야하는 기능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한다.
“대본을 받으면 제가 맡은 인물이 주인공들을 위해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봐요. 작품에서 주인공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조연은 조연이 해야 할 역할이 있고요. 배우는 작가와 연출이 관객 혹은 시청자에게 보여주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도구일 수 있죠. 비중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진 않아요. 작은 퍼즐조각이라도 그 피스가 없으면 퍼즐이 완성되지 않으니까요.”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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