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 경제=서지혜 기자] “죄송한데요, ○○대학 나온 우리 아들이 떨어진 이유가 뭔가요?”
대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하는 김모(30ㆍ여) 씨는 최근 신입사원 공채 중 한 중년 여성으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다.
당황한 김씨는 해당 지원자의 서류를 검토했고, “제2외국어 점수가 기대에 못 미쳤던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 여성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들이 낙담해서 죽고 싶다고 하니 도와달라”며 하소연 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명문대를 나와도 직무 분석이 안돼있으니 불합격한 것”이라며 “부모가 인사팀에 전화해서 거의 빌다시피하니 안타깝고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가을 채용시즌이 시작되면서 기업 인사팀 직원들이 때 아닌 ‘학부모 상담’에 시달리고 있다.
상당수는 ‘불합격 이유를 알고 싶다’고 묻는 수준이지만, 일부는 ‘제발 뽑아달라’고 하소연하거나, ‘합격자 스펙을 공개하라’고 항의하기도 해 인사담당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인사담당자들에 따르면 부모들과의 통화는 주로 ‘자식 자랑’으로 시작한다.
“우리 딸은 토익이 만점이다” “우리 아들은 ○○학교를 졸업했다”며 ‘좋은 인재’임을 강조하는 것.
한 금융권 기업 인사 담당자는 “많은 부모들이 불합격을 재차 확인하기 위해 전화하지만, 일부는 ‘내 자녀가 이렇게 좋은 스펙을 갖고 있는데 불합격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기초적인 합격자 스펙을 공개하라’고 항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경우 인사팀 직원들은 “면접 점수가 낮은 것으로 보인다”는 형식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채용 점수를 세세하게 밝힐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힘들어하는데 뽑아주면 안되겠느냐”며 읍소하는 부모들도 더러 있다.
한 조선업체 인사담당자는 “불합격자의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우리 아이가 계속 취업이 안돼 한강에 가서 죽고 싶다’고 말했다며 뽑아달라고 하소연했다”며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 부탁해 난감하고 힘들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런 부모의 열정은 실제 채용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인사 담당자들은 “헬리콥터맘은 구직시장에서 오히려 짜증을 유발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 반도체 계열사 인사 담당자는 “서류전형에서는 스펙이 중요하지만 면접 당락을 좌우하는 건 직무분석”이라며 “학벌, 토익점수 등을 나열하며 떨어진 이유를 대라고 하니 난감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견 제약회사 인사 담당자 역시 “중견급 기업의 경우 인사담당자가 1명~2명에 불과한데 채용시즌에 부모의 전화까지 받으니 업무에 큰 지장이 있다”며 “이 경우 오히려 아직도 부모의 품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생겨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