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길에 고속도로 휴게소를 이용하다 놀랐다. 인테리어를 새로 한 식당들과 화장실이 너무 깔끔하고 편리했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이들이 한국의 발전상에 대해 감탄하는 것은 익히 들어왔다. 그들의 입을 빌릴 필요 없이, 신도시의 세련되고 말끔한 모습을 볼 때마다, 안전하고 깨끗한 지하철, 그리고 편리한 인천공항을 이용할 때마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한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다.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쉽게 풀기 어려운 복잡한 사회 문제들도 있다. IMF이후 급속히 가속화되고 있는 빈부 격차, 청년 취업 문제, 그리고 이와 맞물려 거론되는 임금피크제, 부의 대물림, 부동산 문제, 낮은 출산율, 무엇 하나 쉬운 문제들은 아니다.

‘노오력’, 최근 20~30대 청년들이 인터넷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노력이란 뜻이지만 부정적으로 쓰인다.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 노력이 통하지 않는 비정상적 현실에 대한 환멸과 자조를 담아 ‘노오력’이 됐다. 지금까지 우리는 열심히 또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근면에만 가치를 두었지, 무엇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노력을 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과 사회에 이익이 되는지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필요한 일이 아닌데도 없는 일까지 만들어 내서 하는 것을 윗사람이 바라다 보니,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미덕이고 근면의 상징이다 보니 비정상적 노력을 하면서 개개인의 삶은 더욱 팍팍해져만 갔다.

문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노력이 비상식적 수준에 와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중산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비중은 10년 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이런 식으로 중산층이 되더라도 행복해질까 하는 질문은 또 다른 문제다. 상황이 더 악화돼 ‘노력해봐야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단계에 다다르면, 우리도 중남미 국가들처럼 성장 동력을 잃고 회복하기 어려운 재앙을 맞이할 수 있다.

어지간한 대학에 입학하려면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열 번 이상 반복해야 하고, 고등학교 내내 수능에서 틀리지 않는 연습을 하지만, 막상 대학에 입학하면 대학 공부를 위한 준비가 안되어 있어 대학마다 개강 전 특별반이 운영된다. 대학생들은 어학 성적, 해외 연수 등 취직을 위한 온갖 스펙을 쌓으려 방학과 연휴를 반납하고 ‘노력’을 하지만, 막상 기업에서는 ‘대학에서 필요한 전공 지식을 충분히 배우고 오지 않아 기초부터 다시 교육시켜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직장인들은 야근은 물론 주말도 반납하며 가족을 포기하기 일쑤인데, 회사 임직원들은 직원들의 생산성이 낮다고 불평한다. 정부는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고 소리 높이지만, 아이 키우기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어려운 시대가 돼버렸는지, 유치원 입학시키는 것부터가 전쟁이다.

이제 우리는 노력의 ‘방향’에 대해 고민해야할 때가 됐다. 개인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노력을 할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설정해 주는 것이 선진 사회 시스템의 기본이다. 정말 잘하고 집중해야 하는 본업에 노력을 쏟고, 그 과정에서는 때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핵심이 아닌 것에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제도를 바꿔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권위주의가 강한 사회에서는, 노력의 올바른 방향 설정이 ‘bottom-up’(상향식)으로 이루어지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지도층에서 가치관을 갑자기 바꿔 하루 아침에 ‘top-down’(하향식) 으로 제도가 개선되기를 바라기도 어렵다. 만약 지금 불합리한 노력을 하고 있다면 그 어려움과 현실적 대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또 견뎌내어 지도층이 된 후 그 불합리함을 잊지 않고 바꾸어 나가는 것이 슬프지만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일 것이다. 물론 우리는 비상식적 노력이 우리 삶을 나아지게 할 것이라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서, “지금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가?”에 덧붙여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는가?”라는 자문부터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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