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나치 침공 당시 샤를로트 여대공…美참전 설득·BBC방송통해 저항 독려 스웨덴·러·英 등 주변국과 두루 혼인 現앙리 대공 모친도 벨기에 공주출신 2000년 양위 앙리 대공·기욤 대공세자 첫 해외 방문지 한국 선택 ‘각별한 인연’
룩셈부르크 대공궁은 오는 9월 6일까지 관광객에게 개방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기념한 ‘샤를로트 여대공의 망명 귀환’ 전시회도 열린다. 나치 침공 당시 저항과 독립의 상징이었던 군주의 활약상으로 주권국가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취지다.
룩셈부르크 대공국은 인구가 54만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이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3년 기준 11만 달러로 세계 최고다. 세계 1위의 철강회사 아르셀로 미탈의 나라이자, 유럽 금융의 허브(hub)다. 산업화 초기에 철광 자원을 발견한 데다, 제도적으로 개방성과 유연성까지 갖춘 덕분이다.
서울의 4분의 1에 불과한 국토에 무려 은행이 150개나 된다. 이들이 보유한 자산만 7420억 유로에 달한다. 법인세율은 유럽 최저이고, 외국인이 인구의 40%를 차지한다. 많은 유럽 기업, 글로벌 금융기관의 본사와 유럽기지가 룩셈부르크에 터를 잡고 있다.
룩셈부르크어(레체부르크어) 뿐 아니라 독일어, 프랑스어 등 3개 언어를 공용어로 쓴다. 170여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고 있다.
▶유럽 왕실가와의 통혼(通婚)=개방과 평등이라는 룩셈부르크의 가치는 군주 가문의 통혼에서도 드러난다.
19세기 룩셈부르크 대공을 겸하던 네덜란드왕 빌럼 3세(1817~1890년)가 사망하면서 10세에 불과하던 딸 빌헬미나가 자리를 잇는다. 하지만 룩셈부르크는 여대공을 거부하고 독립을 선언, 아돌프 나사우 공작(1817~1905)이 군위에 오른다. 빌헬미나 여왕의 모친인 발데크피르몬트 엠마 대공비가 아돌프 나사우 공작의 이복 여동생이다.
아돌프의 막내 동생은 스웨덴 국왕과 결혼해 스웨덴 왕비가 됐다. 이후에도 나사우 가문은 러시아, 포르투갈, 스웨덴,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등 유럽 왕실과 두루 혼인한다. 소국의 생존 전략이기도 했다.
현 앙리(60) 대공의 어머니 조제핀-샤를로트도 벨기에 공주 출신이다. 앙리 대공은 스위스 제네바 유학시절에 만난 쿠바 출신 평민 현 마리아 테레사(59) 대공비와 가문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하지만 조제핀-샤를로트는 장녀 마리 아스트리드는 오스트리아 칼 황제의 손자에게 시집보냈고, 차녀 마르가리타는 리히텐슈타인의 니콜라우스 공자(현 한스 아담 2세 리히텐슈타인 후작의 남동생)와 혼인시켰다. 또 막내 기욤 공자는 스페인 알폰소13세의 증손녀인 시빌라 빌러와 맺어줌으로써 가문의 자존심을 지켰다.
2012년에 1박2일에 걸쳐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린 앙리 대공의 장남 기욤 장 조세프 마리(34) 대공세자는 벨기에의 명망가 라노이가(家)의 스테파니 데 라노이(32)를 세자비로 맞았다.
▶나치 저항의 상징 된 샤를로트 여대공=여대공을 거부했던 나사우 가문이지만 역시 네덜란드 왕가처럼 남계가 끊겨 마리 아델라이드(1894~1924년) 때부터 여대공으로 전환했다. 초대공 때부터 정치에 크게 관여하지 않아 20세기 들어 군주제 폐지론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1919년 초대 여대공인 마리 아델라이드가 여동생 샤를로트(1896~1985년)에게 양위하면서 국민의 참정권은 확대됐고 군주권은 축소됐다. 이해 국민투표에서 80%가 군주제에 찬성했으며, 73%가 프랑스와의 경쟁동맹을 지지했다.
나치 침공 시기에 샤를로트는 프랑스로 피신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미국의 참전을 설득했다. 1943년에 런던으로 돌아온 샤를로트는 BBC방송에서 본국의 저항을 독려하는 메시지를 주기적으로 전달했다. 미군 참전으로 나치가 패망한 후 룩셈부르크는 독립을 얻었다.
▶부유한 앙리 대공가=장 대공을 거쳐 2000년에 양위받은 앙리 대공은 마리아 테레사 대공비와 함께 장애인 지원, 해외원조, 경제와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앙리는 경제개발위원회(BED) 명예의장이며,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약물퇴치 단체인 멘토재단의 회원이다. 환경에도 관심이 많아, 갈라파고스 다윈 재단 의장, 찰스다윈 재단 위원회 회원이기도 하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다. 그는 안락사에 반대하는 등 도덕적 가치 수호에 애쓰고있다.
룩셈부르크 납세자 1인이 짊어진 공실 예산 부담은 유럽 최고다. 포브스의 지난해 추정을 보면 룩셈부르크 납세자 1인당 17유로를 부담, 노르웨이의 2배에 달한다. 유럽 왕실들이 각 정부 긴축재정에 동참해 예산을 삭감하는 것과 달리 앙리 대공 일가는 2011년 이후 오히려 110만 유로를 늘렸다.
현지언론 보르트에 따르면 올해 왕실비용은 약 530만유로다. 그 중 절반 이상이 앙리 대공의 개인적 비용이다. 170만유로는 국가수반의 활동에 쓰인다. 여기에는 왕실 직원들 임금과 대공궁 운영비용이 포함된다. 하지만 포브스는 이 중 유흥비로만 70만3000유로가 쓰였다고 소개했다.
▶경제사절단 이끌고 전세계 누비는 기욤 대공세자=앙리 대공은 기욤 대공세자와 펠릭스(31) 공자, 루이(29) 공자, 알렉산드라(24) 공녀, 세바스티앵(23) 공자 등 4남 1녀를 뒀다. 기욤 대공세자는 각국 왕실 행사는 물론 국제 외교 무대에서 앙리 대공을 대신해 참석한다. 2006년 1월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왕자 세례식, 2007년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의 40세 생일 축하행사에 룩셈부르크 대공가를 대표해 얼굴을 내비쳤다. 그는 룩셈부르크어, 프랑스어, 독일어 뿐 아니라 스페인어와 영어도 유창하다.
경제발전위원회(BED) 위원장으로서 매년 경제사절단을 꾸려 각국을 순방하며, 룩셈부르크의 투자 환경을 설명하는 등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발로 뛰고 있다.
앙리 대공과 기욤 대공세자 부자가 모두 해외 첫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한 점도 이색적이다. 두 사람 모두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기욤 왕세자는 2010년 이후에는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중동국가에서 왕실 주요 인사와 정재계 인사를 만나 ‘오일머니’ 유치에 힘썼다.
한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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