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나이가 보였지만, 미소는 그대로였다. 20년 만에 다시 내한한 밴드 본 조비(Bon Jovi)의 무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와 같다. 추억의 명곡들은 다소 불안한 목소리에 실려 공연장을 울렸다. 1만 4000여 관객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부족한 부분을 ‘떼창’으로 채웠다. 무대와 객석의 어우러짐 속에서 노련한 연주는 빛을 발했다. 한국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보컬리스트 존 본 조비는 특유의 천진한 미소를 무대 내내 잃지 않았다.
지난 22일 오후 8시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본 조비의 내한공연이 열렸다. 본 조비는 30년 넘게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전설적인 밴드인데다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때문에 관객들의 연령대 역시 한 눈에 보기에도 다양했다.
지난 1995년 혈기 왕성한 청년의 모습으로 내한했던 본 조비는 이제 주름살을 감출 수 없는 초로의 중년이었다. 오랜 세월 무대 경험을 쌓은 만큼 야외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연주와 사운드는 훌륭했지만, 그만큼 예전 같지 않은 목소리도 그대로 노출됐다. 존 본 조비의 성량은 가끔 코러스를 뚫고 나오지 못할 정도로 약했고, 음역도 한정된 영역에서만 맴돌았다. 이 같은 아쉬움은 첫 곡 ‘댓츠 왓 더 워터 메이드 미(That’s What The Water Made Me)’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이 아름답게 보였던 이유는 무대에 최선을 다하며 즐기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존 본 조비는 무대 곳곳을 뛰어다니며 관객들과 호흡했다. 공연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검은 티셔츠는 비라도 맞은 듯 땀으로 젖었다. 그가 마이크를 잡았을 때 혼신을 다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관객을 압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관객들은 직접 준비해 온 다양한 플래카드를 흔들어 보이고, 단체로 핸드폰 조명을 무대로 비추며 본 조비에 화답했다. 존 본 조비는 “땡큐(Thank You)”를 연발하며 감격에 찬 미소로 고마움을 전했다.
추억을 소환하는 히트곡 나열에서 벗어나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세트리스트도 돋보였다. 본 조비는 데뷔곡 ‘런어웨이(Runaway)’와 80년대 불멸의 히트곡 ‘유 기브 러브 어 배드 네임(You Give Love a Bad Name)’부터 21세기 밴드에게 전성기를 다시 한 번 가져다 준 ‘잇츠 마이 라이프(It’s My Life)’, 컨트리를 시도했던 ‘로스트 하이웨이(Lost Highway)’, 신보 ‘버닝 브리지스(Burning Bridges)’의 수록곡 ‘위 돈트 런(We Don’t Run)’까지 다채로운 곡들을 라이브로 선보였다. 앙코르 포함 총 24곡에 공연 시간 또한 2시간 20여 분에 달했던 양적으로도 풍성한 무대였다.
이날 공연 최고의 순간은 앙코르 무대였다. 본 조비는 ‘라디오 세이브드 마이라이프 투나잇’(Radio Saved My Life Tonight)’를 시작으로 ‘후 새즈 유 캔트 고 홈’(Who Says You Can’t Go Home)’, ‘해브 어 나이스 데이(Have a Nice Day)’, ‘왓 어바웃 나우(What About Now)’ 등 무려 7곡을 선보였다.
절정은 마지막 앙코르 곡이었던 ‘올웨이스(Always)’ 무대였다. ‘리빙 온 어 플레이어(Livin’ On A Prayer)’ 무대를 마지막으로 공연을 끝내는 듯하던 본 조비는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관객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올웨이스’는 유독 한국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지만, 본 조비가 라이브에서 잘 부르지 않는 곡으로도 유명하다.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은 관객들은 감격에 젖은 듯 그 어느 곡보다 더 크게 노래를 따라 부르며 감격에 젖었다.
80~90년대 록 음악에 빠져들었던 이들에게 본 조비는 피할 수 없는 관문이었다. 본 조비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록의 매력을 친절하게 일깨워준 훌륭한 입문서였으니 말이다. 추억의 한 페이지를 직접 마주한 관객들은 공연이 끝난 뒤 진풍경을 연출했다. 일부 관객들이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공연장을 빠져나가면서 ‘올웨이스’의 후렴구를 불렀다. 그러자 공연장을 나서던 수많은 관객들도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공연장 바깥에서도 이어진 ‘떼창’은 록의 전당 입구에서 미소를 짓던 전설을 향한 경의의 표현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