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저기 죄송한데, 밤에는 물 사용 좀 자제해 주시면 안될까요?”
서울 광진구에 사는 금모(31) 씨는 최근 위층에 사는 이웃에게 어렵게 말을 건넸다. 위층에 새로 이사 온 남자는 밤마다 샤워를 하는지, 빨래를 하는지 알 수 없는 물소리로 금 씨의 단잠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위층 남자는 “노력해 보겠다”면서도 “매일 퇴근이 늦는지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좁은 땅덩어리에 5000만 인구가 복작거리며 사는 한반도에서 타인으로부터 울려퍼지는 공기의 진동에 고막을 틀어막고 싶은 심정을 느껴본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더불어 내가 내는 소리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나 않을까 마음 졸인 것도 한국인의 보편적인 경험이다. 서로 멀리 떨어지면 얼어죽고, 가까이 다가가면 상대의 가시에 찔린다는 딜레마가 고슴도치의 것이라면, 한국인에게는 그런 딜레마 사이에서 고민할 여지도 없이 서로가 세운 ‘소음의 가시’에 찌르고 찔리는 비극이 강제돼 있다.
▶“시끄러워 못살겠다”…전국은 소음 분쟁 중
소리도 공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닌 시대라 할 수 있지만, 지금 소음 공해는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이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환경부에서 제출받은 ‘최근 4년 간(2012년∼2015년 6월) 소음 관련 민원및 처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층간 소음 민원은 2012년 7021건에서 2013년 1만5455건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도 1만6370건으로 증가했다. 올해의 경우 상반기까지 8537건이 접수됐다. 공사장 소음 민원도 2012년 3만8327건에서 2013년 4만8603건, 2014년 5만5212건으로 증가 추세다.
올해 개통한 호남 KTX의 경우 개통 한 달만에 선로를 따라 둥지를 틀고 있는 주민들로부터 소음 민원이 65곳이나 접수됐고, 대구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 기대되고 있는 동대구복합환승센터는 소음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친 상황이다. 광주에서는 야구장 인근 주민들이 지자체와 야구구단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군부대 사격장 인근과 공항 주변에서는 소음 피해로 인한 소송이 몇년째 줄이으며, 관련 소송을 전문적으로 모집ㆍ중개하는 브로커가 있을 정도다.
오디션 열풍으로 활발해진 버스킹 문화 역시 소음 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인디 뮤지션들의 메카인 홍대 걷고싶은거리는 최근 야간 버스킹 금지 구역으로 지정돼 논란이 일었고, 가수 김광석의 고향으로 유명한 대구 ‘김광석 거리’에서도 논란 끝에 공연 시간이 오후 7시까지로 제한됐다. 부산시 해운대구는 지난해 8월부터 미리 신청한 공연팀에게만 공연 장소와 시간을 배정해주는 ‘버스킹 등록제’를 실시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서 통용돼 여성 비하 논란을 일으킨 ‘맘충(mom+蟲)’이라는 용어 역시, 공공장소에서 천둥벌거숭이처럼 시끄럽게 뛰노는 아이들을 ‘내 자식’이라는 이유로 방치한 데서 연유하는 성격이 강하다.
개인과 개인 간의 소음 분쟁은 종종 참혹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다. 순간 치밀어 오르는 감정 때문에 사적으로 복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층간 소음을 일으키는 위층 이웃에 복수하기 위해 집 천장에 우퍼스피커를 설치하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몇해전 아파트 층간 소음이 살인 사건으로까지 번지는 일이 잇따르며 사회적 경각심이 고취됐다가 지금은 다소 잠잠해졌지만, 소음은 여전히 강력 범죄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지난 2월 광주의 한 술집에서는 옆 테이블에 앉은 손님이 시끄럽게 한다며 말다툼을 벌이다 살인한 사건이 발생했고, 지난 7월 서울 강북의 한 주택가에서는 옆집에서 넘어오는 텔레비전 소리가 시끄럽다며 이웃을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이달 19일에도 경남 남해에서 조용히 해달라고 지적하는 이웃 노인을 살해한 20대 청년이 검거되기도 했다.
▶청력 장애, 스트레스 고혈압, 생식 능력, 비만… 삶의 질 떨어뜨리는 소음 소음은 단순히 청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 이외에도 혈압을 상승시키고 심장 박동을 빨라지게 하는 등의 생리적 영향, 주의력을 저하시켜 작업능률을 저하시키는 등의 수행행동능력 장애, 수면 장애 등을 일으킨다. 특히 20~200헤르츠(Hz) 대역의 저주파 소음은 그 위험 정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공기 소음, 철도 소음, 공사장 소음 등 대부분의 소음원에는 저주파 소음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으며, 층간 소음의 경우에도 윗집에서 소음을 내면 아랫집에서는 저주파로 변해서 들리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의 연구결과는 소음이 생각 이상으로 인체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가령 교통 소음에 많이 노출되면 뚱뚱해질 위험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과 대학 연구팀은 성인 5000여명을 대상으로 소음 기준을 45dB로 설정하고, 5dB 이상 올라갈수록 허리둘레, BMI(신체 질량 치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비교한 결과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자동차 소음의 경우 5dB이 올라갈수록 허리둘레가 0.21cm가 늘어났고, 기차길 소음에 노출된 참가자는 0.46cm, 비행기 소음에 노출된 참가자는 0.99cm 만큼 허리둘레가 증가한 것이다. 연구팀은 소음에 노출될 경우 숙면을 방해해 식욕을 촉진하는 공복 호르몬 그렐린 분비를 촉진시키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돼 비만을 유도한다고 설명한다.
또 덴마크 암 역학연구소 연구팀이 덴마크 코펜하겐과 오르후스 지역에 사는 5만1400여명을 대상으로 10년간 추적조사 한 결과, 교통소음이 10dB 올라갈 때마다 뇌졸중을 겪을 위험은 14%씩 증가했다. 특히 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서는 소음이 10dB 오르면 뇌졸중 위험이 27%씩 올라갔다.
이밖에 초저주파 소음이 망막과 혈관의 관문을 손상시켜 시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나 테스토스테론의 생합성을 저해해 생식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소음이 이처럼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환경 문제로 대두하자 정부 역시 소음지도 제작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예산 및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지난해 5월에는 공동주택 층간소음 기준을 완화해 인식 자체가 미흡한 것 아니냐는 질타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강력한 처벌 규정은 물론, 소음세까지 걷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소음을 느끼는 것은 개인마다 다른 주관적 공해이기 때문에 처벌보다는 시민 의식 성숙이 필요하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은 사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소음 대책 마련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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