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북한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마저도 미국의 대북(對北) 적대정책을 비난하는 장으로 활용했다. 이란 핵협상 타결 후, 북핵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박에 ‘북한의 핵 개발은 미국 때문’이라는 주장을 이어간 것이다.
이는 앞서 북한이 주요 외교관들을 총동원해 ‘핵개발 지속’ 선전전을 편 것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최근 한국,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6자회담 관련국들의 접촉이 활발하고, 아세안(ASEAN) 관련 회의에서도 북핵문제가 논의돼 이에 대한 북한의 적극적인 반발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리동일 전 북한 유엔(UN)대표부 차석대사는 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추가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 “미국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의 주권과 존엄을 지키고 핵 재앙으로부터 인민을 보호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을 갖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별도로 북한 대표단 수석대표로 ARF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말레이시아를 찾은 리수용 북한 외무상은 전날부터 러시아, 파키스탄, 미얀마, 일본, 인도네시아 등의 외교장관을 차례로 만나 북한의 핵 보유가 정당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최근 미국, 중국, 러시아, 유엔 주재 외교관들에게 차례로 바통을 넘기며 미국의 적대시 정책 탓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 말 지재룡 중국 주재 북한 대사가 “우리의 핵 억제력은 미국의 핵 위협과 적대시 정책으로부터 나라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 수단”이라고 밝힌 후 계속해 같은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북한이 대외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수세에 몰린 북한의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분석이 외교가에서 나온다. 이란 핵 협상 이후 북핵문제에 쏠리는 국제사회의 관심에 핵 보유에 대한 나름대로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아세안 관련 회의에서는 적지 않은 국가들이 북한에 대해 강경한 비핵화 요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ARF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은 물론 이보다 하루 전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에는 핵ㆍ인권문제와 관련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문구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세안 관련 회의가 열리기 바로 직전, 한미일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공조태세를 보인 것도 북한의 이러한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말 시드니 사일러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는 한중일을 연달아 방문하고, 북핵문제에 대한 해법을 논했다. 이 움직임에는 중국까지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북한 입장에서는 선제적으로 한미일과 중국간 공조에 틈을 벌려야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같은 주장을 반복, 강조하는 것은 북핵문제와 관련된 국제사회의 압박이 부담스럽다는 것을 드러내는 한편, 핵무기를 실질적인 군사 위협수단으로 확보하겠다는 의도도 있을 수 있다”면서 “이는 남한도 새로운 대북 협상 전략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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