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립기념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독립기념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인 1982년 일본 고교 역사교과서 검정당시 일본 역사왜곡 문제가 터지자, 반대 여론이 비등해지며 500여억원의 국민성금이 모여 건립됐으며 1987년 8월 15일 개관했다
매년 100만이 넘는 방문객이 독립기념관을 찾는 가운데, 일부 독립기념관에 관한 일부 역사는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있다.
우선 독립기념관은 개관을 하기도 전에 화재가 기념관 본관 천장을 홀라당 타버린 사실 하나.
직접적인 화재원인은 전기배선공사의 부실이었지만, 준공을 1년이나 앞당기면서 졸속공사를 진행한 탓이 컸다. ‘86서울아시안게임’등을 겨냥해 계획보다 준공을 1년 앞당겨 86년 8월15일 개관하기로 했던 기념관은 결국 당초 예정대로 1987년 개관됐다.
또한 독립기념관에 세워져 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건립비가 철거된 사실도 흥미롭다.
독립기념관 건립비는 1987년 8월15일 개관 당시 겨레의 집 앞 중앙통로에 세워진 것으로, 무게 40t 화강암에 가로 450㎝, 세로 210㎝, 두께 130㎝의 크기로 돼 있는 비석이었다.
이 건립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름이 “우리 스스로 근대화를 이룩하려던 노력이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으로 좌절당하는 수난을 겪었으나 순국선열 애국지사의 희생으로 독립을 되찾았다...우리는 자주독립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겨 이를 후손에게 전하고 조국 통일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우리 모두의 정성을 한데 모아 독립기념관을 세우게 됐다” 는 내용뒤에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1996년 12월 16일 대법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정지 결정뒤, 국회와 시민단체에서 건립비 철거요구가 있어왔으며 결국 이 비석은 2007년 4월 철거됐다.
또한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순자 씨가 기념식수한 40여년생의 느티나무 표지석과 제7전시관(대한민국임시정부관) 앞 전 전대통령 이름이 새겨진 30년생 기념식수 반송 표지석도 철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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