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법은 안정돼야 하지만 결코 정체돼서는 안된다.”
미국의 저명한 법철학자 로스코 파운드(Roscoe Pound, 1870~1964)의 말이다. 1945년 8ㆍ15 광복 이후 70년 동안 정부와 우리 사회각계는 다양한 일제 청산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산 속도가 더딘 분야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 중 대표적인 곳 중 하나로 ‘법률’이 꼽힌다.
대한민국 법률은 1948년 헌법,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사회 변화에 따라 많은 변화를 거듭했다. 하지만 법률용어와 법조문에 있어서는 여전히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제식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당시 법 제정과 교육을 담당했던 교수 중에 일본 유학파들이 많았고, 법조계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도 용어 순화를 늦춘 주요 원인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으로 형법 1조에 나와있는 ‘경(輕)한’을 비롯해 10조의 ‘심신장애’, 48조 ‘생(生)하였거나’, 59조 ‘개전(改悛)의’ 등의 표현은 전형적인 일본식 표현으로 분류된다. 각각 ‘가벼운’, ‘정신장애’, ‘생겼거나’, ‘뉘우치는’ 등으로 순화가 가능하다. 최근 모해(謀害)위증 혐의로 검찰에서 피고발인 신분으로 조사받은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사례에서도 ‘모해’라는 법률용어에 대해 생소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기도 했다. 모해 역시 일본식 표현으로 ‘모함하여 해치다’는 뜻을 지닌다.
또한 법조문 제목이나 본문에서도 ‘일제’라는 표현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법제처를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 정책자료에 따르면 법률명과 조문에 ‘일제’라는 용어가 들어간 법률은 ‘일제감정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등 총 6건이다.
그밖에 법령 이름을 띄어 쓰지 않고 그대로 붙여 쓰는 관행도 일본식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입법조사처는 “현행 법문에는 일본식 한자어가 다수 남아 있는 바 법령의 수범자인 일반 국민이 법령을 읽고 이해함에 있어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라며 “‘일제’ 또는 ‘일제 강점기’라는 표현보다는 우리 민족의 항쟁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대일항쟁기’ 등의 표현으로 조문을 수정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행히 형법 등 일제식 법률 용어 청산 관련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법무부 형사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위원장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29일부터 법제처ㆍ한국형사정책연구원ㆍ국어학자 등 전문가들과 함께 형법에 남아 있는 일본식 표현과 어려운 한자를 순화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법제처 또한 ‘알기쉬운 법률만들기’ 사업을 통해 일본식 법률 표현을 수정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위원회 논의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연말까지 순화된 형법 개정안을 마련해 본격적인 입법을 추진하다는 계획이다.
bigroot@heraldcorp.com

